보고 싶다, 친구야/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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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친구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괸 수필창작반 김정수
겨울에 웬 비가 이렇게 오는지 모르겠다. 비가 오는 날이면 친구 생각이 나서 글이라도 쓸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 속에 살면서 한가한 시간이면 친구 편지나 읽어 보게! 너무 빨리 가버린 세월이었다. 이마의 땀마저 닦을 수 없었던 그 시절, 너와 나는 서로 생활에 허덕여야 했었다. 나는 아버지 병수발 때문에 한시도 뒤돌아볼 수 없었다. 어린 중학생으로서 꿈과 희망 하나를 갖고 자라며 철이 들었지. 그 때는 풀빵이 꿀맛 이었다.
김제군 교동리 한 마을에서 중학교 교복을 입고 샛길을 누비며 학교에 등교를 했다. 그 때는 가방이 어찌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힘에 겨워 한쪽 팔과 어깨가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학기에는 새로운 책이 아닌 한 학년 위 선배들의 헌 교과서를 구입하여 공부를 했다. 그것도 다행이었다. 교과서가 없어 책을 빌려 보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우쭐대며 한껏 어깨가 올라가 있었지 아마? 책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부모님은 5일장을 보시느라 항상 분주한 하루를 보내셨지. 친구는 나보다 키가 많이 컸다. 우리 반에서 맨 뒤에 줄을 섰으니까. 손은 내 손보다 배나 커서 반 친구들이 꼼짝도 못했다. 부잣집 자손으로 태어났으면 한 자리 해먹을 친구라고 어른들이 말씀을 하셨다. 같은 마을에 살고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았으니 항상 붙어 다니며 큰소리로 싸우기 일쑤였다. 우리는 영원한 적수였다. 공부도 중상위 그룹에서 맴돌았다. 다만 없이 살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세월을 보내며 성장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같은 책상 두 줄 아래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우리는 말이 없어졌고 선의의 경쟁자가 되었다. 경쟁에 불이 불어 서로 공부에 전념했다. 수업이 끝나 집으로 갈 때면 같이 뛰어서 집으로 갔다. 집에 오면 나는 심부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가 병상에 계시니까 어쩔 수 없었다. 집에서 혈관주사를 놓아야 하니까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셨다. 어느 때는 화를 내실 때도 계셨다. 오죽하면 그러실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내 꿈에 대한 회의도 느껴졌다. 내 꿈을 펼쳐라, 아니 접어버리자. 거친 숨소리에 호롱불도 흔들렸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친구와 나는 탈출구를 생각했다. 김제 성산봉 중턱에서 김제 시가지를 바라보며,
“우리 졸업만 하면 서울로 가자.”
친구가 말했다.
“네 아버지는?”
열심히 머리를 짜가며 세운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해 여름, 아버지는 세상을 뜨셨다. 세상에 모든 꿈을 버린 나는 칩거했고, 집안일에만 열심히 매달렸다. 친구의 우정 어린 위로 때문에 힘들었던 그 시절을 잘 넘기고 군에 입대를 하였다. 우리 둘은 운명에 놀아난 듯 군대도 한 날 한 시에 논산훈련소 28연대 1소대 같은 침상에서 훈련을 했고, 배가 고파 우리는 식사당번을 자청하였다. 친구는 키가 커서 항상 소대 기수를 했다. 남자들에게는 멋진 병영생활을 하면서 겪은 숨겨둘 이야기도 많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눈앞에 두자 잠이 오지 않았다. 어디로 배치될까? 서울 수색 00사단 예비사단으로 배치가 되었다. 우리 두 사람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같은 사단이지만 대대는 조금 달랐으나 날마다 볼 수 있어 좋았다. 같은 행정병으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제대 7개월을 눈앞에 두고 나는 자원하여 월남에 파병되어 근무지를 바꾸었다. 그 때 친구와 헤어졌다.
나는 개구리 제대복을 입고 전주 35사단으로 돌아와 제대를 하였다. 친구는 서울에 둥지를 틀고 직장의 과장으로 생활하였고, 나는 고향을 지키는 공무원으로 살며 가끔 친구와 만나 막걸리에 취해 보기도 했다. 친구의 서울 생활이 고단했던지, 7년 전 집에서 출근하다가 버스 안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생존 시 진안 부근에 자연이 숨 쉬는 우리 둘만의 별장을 지어 노년을 보내자고 했었다. 나는 조용한 산골에 별장을 지어 놓았으나 건강 악화로 겨울에는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서울에서 사진학 교수생활을 하면서 친구가 많이도 보고 싶고 많이도 생각났다. 그는 진정한 나의 친구였으니까. 얼마 전 나는 수술하려고 서울 삼성병원으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아내와 함께 친구이야기를 했었다.
“아까운 친구, 영원한 친구여! 자네가 먼저 저승 가는 차를 타고 갔다면 나는 조금 더 늦게 가겠네.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나 가는 길은 하나이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이승에서 못다 한 공부도 꿈꾸어온 일들도 하나하나 세월이 간다 말고 열심히 하면서 지내게. 보고 싶다, 친구야!”
(2013.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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