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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바람/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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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06회 작성일 13-02-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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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바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신구 눈이 살포시 내린 일요일 오후, 모처럼 한가하여 가까운 산을 찾았다. 나는 산을 찾을 때면 저마다 다른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을 좋아한다. 너나할 것 없이 푸르던 잎이 어느덧 단풍으로 변한다. 어느 날, 나무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훌훌 다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시위를 한다. 숲은 잎도 열매도 모두 내려놓았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자고 한다. 앙상한 가지 꼭대기에 남은 빨간 감 하나, ‘내가 감 나무로 소이다! 나까지 없어지면 누가 날 감 나무라할꼬?’ 하는 듯하다. 잠깐 쉬면서 숲을 잘 살펴보라는 듯, 산등성이 산책길에는 긴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 산등성이 오름길 등산로 변 좌우로 나무들이 줄줄이 누워있다. 지나는 몇 몇 학생들이 “야! 우리들 온다고 나무들이 엎드려 반기는 것 같네!” 그 뒤로 젊은 부부가 투덜대며 지나다가 “당신도 이 나무들 좀 닮아봐! 이렇개 딱 엎드리면 누가 뭐랄까?” “피이!” 주위를 살펴보니 어쩌다 키 큰 나무가 몇 군데 꺾이기는 했어도, 이곳처럼 덩치 큰 아름들이 나무들이 뽑히고 꺾인 채, 줄줄이 누워있는 곳은 없다.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바람막이가 되어 꺾인 것 같다. 양손에 지팡이를 쥔 노 부부가 산을 오른다. “야들도 우리같이 너무 오래 살아서 다리 힘도 없고 허리힘도 없어서 이렇게 누었나 보네!” 금년엔 유달리 한 달에 세 번이나 큰 태풍이 금수강산을 휩쓸었다. 하잘 것 없는 풀잎과 자라지도 못한 어린 나무들은 다 멀쩡한데, 어이하여 수십 년이나 크며 키작은 나무들을 굽어보며 큰 소리를 치던 네가 그렇게 되었느냐? 네가 바람에게 밉보였던 모양이지? 들도 산도 나무도 몸살을 앓았건만, 그 많은 나무 중에서 키가 큰 너만 꺾이고, 부러지고, 뿌리채 뽑히게 되었는지, 가늠이 가지 않는구나. 너의 그늘에 묻혀 살던 잡초와 작은 나무들도 너에게 할 말이 많으련만, ‘이렇게 되었으니 너의 삶도 이제 다 되었구나? "제가 비록 태풍에 쓰러졌지만 쓰러진 채 생태계를 위해 내가 할 일은 다 한답니다. 버섯밭이 되고, 곤충들의 집이 되기도 하며, 죽어서도 다른 생물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기도 할 겁니다." 나무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사르르 휙!’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듯 산새가 울며 ‘파다닥’ 날아간 뒤, 나뭇가지에 걸쳐있던 어치와 곤줄박이도 ‘후루룩’ 달아난다. 청설모가 부지런히 높은 나뭇가지에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뜀박질을 하는 데, 땅위에서는 재빠른 다람쥐가 아양을 떨며, 고개를 갸웃대더니, 슬픈 표정을 짓는다. 언 땅을 잘 파지 못하는 두더지도 슬픈 표정이다. 그들은 나무 오르기를 포기하고, 땅을 파려는 다람쥐와, 잘 파이지 않는 땅 속 헤집기를 포기하고 나무에 오르려는 두더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치와 곤줄박이는 먹이를 구할 수 없는 겨울을 대비하여, 열매를 땅바닥의 틈이나 나뭇가지사이에 저장해 두면, 이것이 봄에 싹을 틔워 숲의 구성원이 되기도 하며, 새가 먹은 열매가 배설물로 나와 싹을 티운다니, 모두 제몫을 하는가 보다. 산에 깔린 돌 중 단단하고 쓸 만한 돌은 수석(壽石)이 되고, 보기 흉하고 비비틀며 괴롭게 자란 나무는 분재가 되며, 색깔을 뽐내며 날아다니던 예쁜 새는 조롱에 갇히거나 사냥감이 된다. 그런데 그나마 별 볼 일 없이 보이는 이 숲속의 보통 흙, 보통 돌, 보통 나무, 보통 새들은 행복하단다. 그러니 보통사람인 나도 행복하다. 지나던 등산객이 “어이, 좀 쉬었다 가세!” 하며 앞에 가는 친구를 세운다. ‘모든 게 쉬었다 가는 데, 이놈의 세월은 왜 쉴 줄도 모르는고? 세월은 왜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고?’ 가장 부지런히 도토리를 주어 숨겨놓은 청설모는 어디에 숨겨 놓았던지 생각나지 않아, 다람쥐에게 다 빼앗기고, 다람쥐는 땅속에 묻은 도토리를 찾다가 결국 두더지에게 양보해야만 하는 곳이 숲이다. 우리 인간도 나이가 들면서 돈 있는 사람은 아까워 다 못쓰고, 없는 사람은 남의 탓만 하다가 고생고생하며 살아간다. 많이 가진 자는 주위만 살피다가, 뜯기거나 사기당하거나, 결국엔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거나, 누구에게 뺏길 줄 뻔히 알면서도 결국은 땅속에 묻고 간다. 바람은 숲을 사랑하고, 숲도 바람을 사랑한다. 숲속의 잎과 나무가 바스락 바스락 떨며, 가지를 흔들어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은 살래살래 나무를 간질이고, 어루만지며 키워 준다. 그러나 어느 날, 화난 바람은 나무를 뿌리 채 뽑고, 가지를 부러뜨린다. 그렇게 바람의 위용을 알리고 또다시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져준다. 오늘도 사람과 자연이 같이하듯, 숲과 바람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201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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