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초와 금연/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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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초와 금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공초(空超) 오상순 묘소의 상석(床石)에는 돌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재떨이가 하나 있다. 공초더러 북망(北邙)에서도 두고두고 담배를 피우라는 뜻이리라. 묘지 옆 시비(詩碑) 뒷면, 짤막한 문장 넷으로 압축한 일생에 "몹시 담배를 사랑하다."라는 대목이 빠지지 않았다. 호(號)까지 ‘꽁초’에서 음을 따왔던 공초는 ‘애연소서’(愛煙小敍)'에 금연이라는 두 자를 보면 송충이나 독사를 보듯 소름이 끼친다고 썼다.
내가 담배를 배운 건 완전히 타의에 의해서였다. 입대하여 지급된 화랑담배를 훈련중 조교가 '담배 일발 장진'하여 발사하면 피워야 했다. 쓰디 쓴 맛에 처음에는 기침도 나고 거역스러웠으나 공동 흡연자가 되었다. 훈련복이 흙투성이가 되어 서로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면 그 맛이 입김과 어울려 콧구멍에서 낸내가 나도록 피우고 "화랑담배 연깃속에 사라진 전우야"란 군가에 맞춰 당연한 걸로 받아 들였고, 담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이자 낭만이었다. 하급초지만 한 대 피우면서 위안을 삼는 동안 애연가로 변해 버렸다. 그 뒤로 한 20년은 하루 한 갑씩 피워댔으니 담뱃값도 만만치 않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아 새해가 되면 으레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마음이 약한 탓에 실패를 거듭했다. 가족의 성화도 있고 마흔이 지나면서 흡연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가기 시작하였다. 금연(禁煙)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아들과 딸이 내 건강을 걱정하여 적극 권유한 탓이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자식들 앞에서 내 허약한 정신력을 보이기 싫어 딱 끊고 한 달이 지나니 금단증상(禁斷症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증상은 마치 사춘기(思春期)를 다시 겪는 것 같이 들뜨고, 불안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그런 사연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연치 않게 택한 것이 가까운 산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산을 이리 저리 헤집고 다니면 그런대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산과의 인연은 이렇게 해서 맺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담배를 완전히 끊게 되었고, 묵묵히 땅만 보고 걸으며 오르내리는 사이 나도 모르게 이런 저런 일들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글쓰기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는 분명 ‘산’과 ‘산행’이 가져다 준 신비한 조화(調和)임에 틀림없다. 유명사찰이 산중에 위치하여 스님들이 그 길을 오가며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이고득락(離苦得樂) 전미개오(轉迷開悟)의 길이 바로 거기 산에 있었다. 산행을 즐기게 됐으니 담배를 끊으면서 얻은 소득치고는 꽤 크다.
뇌졸증으로 수술을 받은 친구가 깨어나면서 담배를 찾는 걸 보니 중독치고는 심하다 싶었다. 요즘 애연가들의 수모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에게 건강 때문에 금연을 권하던 아이들이 성장하여 담배를 피우는 나의 전철을 밟고 있어 몇 번인가 담배는 백해무익함을 강조하였지만 그들 스스로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은 담배에 관한 일화는 고등학교 때 밤중에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선배가 담배 때문에 나를 자극하여 달밤에 내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내가 후배라는 사실을 모르리라 생각하고 고소한 마음과 스릴을 느끼며 지냈다. 그 선배는 학교에서 나를 보자 밤중에 일을 기억하고 그의 선동으로 3학년 선배 반으로 끌려가 집단 구타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건 순전히 담배 때문이고, 그가 나를 모를 거라 착각한 게 문제가 되었다.
얼마 전 그 선배가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상을 가 향을 지피면서 사진을 보고 흠칫 놀랐다. 영정사진은 대부분 근엄한 표정인데 웃고 있었다. 약간 비스듬히 앉아 있는 모습이 살아온 세월을 직시하며 조롱하는 웃음이라는 생각을하다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젠장' 하고 중얼거렸다. 그 선배의 사망원인은 담배 때문이리라. 그 버릇을 못 고치고 갔다는 의미심장한 말이지만 한 번 때린 대가가 뭇매로 돌아왔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요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사면초가나 왕따의 경지를 넘어 거의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공초'가 살았다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국민건강진흥법에는 공공의 장소는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금연장소로 지정되었다. 흡연장소 지정이 없으면 담배를 피울 수 없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담배 꽁초를 함부로 버려 산불을 내거나 화재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차라리 금연법이라도 제정하여 금연국가가 되면 어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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