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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임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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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32회 작성일 12-10-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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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싸움 전주시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종우 추석을 앞두고 2012년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완주군 봉동읍 봉동교광장에서 민속소싸움대회가 열렸다. 평소 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마침 봉동 고천리 농장에 다녀오는 길에 소싸움을 보았다. 전국에서 많은 소들이 참가하여 기술과 힘을 과시하며 서로 이기려고 뿔과 뿔을 마주치며 기를 돋우고 있었다. 소들은 서로 힘껏 밀어붙이고, 목 치기로 상대방의 목을 공격하며, 뿔 걸기도 하였다. 또 들치기, 머리치기, 옆치기, 뿔 치기로 연속 공격을 하는 기술도 사용하여 마치 천하장사씨름대회를 방불케 하였다. 공격 중 먼저 머리를 돌려 달아나면 패하는 것이다. 경기에는 시간제한이 없으며, 한 마리가 패할 때까지 계속 진행하는 것을 보니 스릴이 있었다. 그러나 가슴이 두근두근 하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젊었을 때 소를 기르던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 소와 인연을 맺게 된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무주 안성장날 돼지 한 마리를 팔아서 송아지를 한 마리 사왔다. 이때부터 소는 내 차지가 되어 학교만 갔다 오면 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야 했고, 수시로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겼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랴, 오후엔 소를 돌보랴, 눈코 뜰 새 없었다. 그 때는 여물을 썰어서 솥에 넣고 끓여서 소를 식구처럼 돌보았다. 소는 농가마다 한 마리씩 길러서 마을 전체에 십 여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대농이어야 소도 사육하였는데, 농사일은 대개 소를 이용했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었다. 또 아들이 상급학교에 가게 되면 소를 팔아서 등록금도 마련하였다. 나는 풀 베는 일이 제일 싫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불평 없이 소를 사육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겨울, 형님은 나무하러 가면서 여물을 썰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했었다. 나는 마을 친구들과 미리 여물을 썰다가 잘못하여 오른손 장지와 검지를 한 마디씩을 잘려 버렸다. 이 사고가 나에게 커다란 치명타가 되었다. 지금 같으면 수지 접합수술이라도 할 텐데, 그 때에는 그냥 진안 병원까지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를 하였다. 이를 계기로 손에 수전증이 생겼다. 지금은 글씨도 못 쓰니 나와 소의 인연은 좋을 턱이 없다. 그래도 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손이 나은 뒤에도 소를 길러야 했다. 소는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집 살림을 불려주고 논도 사고 집도 고치는 디딤돌이 되었다. 소는 내가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우리 집의 반려동물로 생활을 같이했다. 요즈음은 풀이 많아서 소를 먹이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그 때는 풀이 그렇게 잘 자라주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들었다. 논둑 밭둑에 있는 풀을 베어다 사료로 이용해야 했다. 요즈음 벌초하고 남은 풀을 치우면서 이 풀을 소에게 먹이면 좋겠는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소를 기른 경험을 살리려고 고등학교는 전주농림고등학교 축산과로 진학하였다. 내가 농촌지도소 현직에 있을 때는 매년 한 번씩 가축품평회를 열어 소의 우열을 가렸는데, 품평회에 참가한 좋은 소를 골라 종축장으로 보내 품종을 개량하곤 하였다. TV에서나 보던 소싸움을 실제로 보니까 더 실감이 났다. 내가 좀 젊었더라면 좋은 소를 길러 이런 소 싸움대회에 출전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일 뿐이다. 가버린 젊은 날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2012.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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