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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알고 있으리라/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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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35회 작성일 12-09-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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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알고 있으리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시골 고향마을에는 당산이 있다. 그곳에는 으레 오래된 느티나무 몇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 수목으로 늘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느티나무를 보고 ‘늘 티내는 나무’, ‘늘 티 나무’, ‘느티나무’라 불렀다. 내 고향에는 위아래 두 개의 당산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잠시만 앉아있으면 마을의 동정(動靜)도 훤히 알 수 있다. 그 뿐이랴! 언제 가도 누구든 다정하게 반기고 안아준다. 아마 몇 아름드리, 거의 수 백 년은 됨직했다. 지금도 커 보이니 어릴 적에는 매우 크게 느꼈다. 그 밑에는 널찍하고 큰 바위가 깔려있어 오가던 분들이 땀을 닦으며 쉬고, 과객과 동네 사람들이 정보교환도 하며 낮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렇게 큰 바위를 어떻게 옮겨왔는지 아리송하고 신기할 지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새봄을 맞아 그 잎이 피는 상황을 보고 농사의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일제히 활짝 잘 피면 풍년으로, 부분적으로 차이가 나면 흉년이 들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여름이면 그곳은 남성들이 노소동락하는 곳이다. 그늘 밑에서 작업도 하고 노인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장기를 놓았다. 내가 처음 겪은 고누 게임, 아이들은 땅바닥에 고누판을 그려 고누를 두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마다 연례행사인 *삼굿에 따른 작업은 서늘한 그늘 밑에서 이루어졌다. 삼(대마) 베끼기는 마을전체의 협동 작업이었다. 서로 많이 베끼려는 경쟁이 2~3일 계속되는데 삼을 베끼고 나오는 겨릅대는 각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 겨릅대는 농촌에서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았다. 때로는 시냇물에서 멱을 감고 그늘진 바위에서 낮잠을 잤다. 때가 되면 집으로 찾아들어 점심을 먹고 뛰놀던 근심 없던 철부지 시절이었다. 한 여름 자장가처럼 불러주던 매미들의 노래가 즐거웠다. 늦가을이 되면 농산물의 임시 건조장이 보관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농작물을 직접 수확하지만 건조시켜야할 콩, 조, 수수, 등이 있었다. 통풍이 잘되는 이곳, 특히 콩 둥지는 충분히 말라야 콩 타작이 수월했다. 엄동설한이 되면 인기척 하나 없는 쓸쓸한 바위에 눈만 수북하게 쌓이고 찬바람이 불어 귀를 떼어가려 했었다. 망구가 된 이 나이에 바라보면 옛 일이 삼삼하고 뛰놀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요즈음처럼 놀이터나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고 모이는 곳에 CCTV를 설치해 놓았더라면 동영상이 찍혔을 것이다. 더욱 궁금해지는 것을 상상해보면 “조선시대의 생활에 구 한국말의 동학혁명, 망국의 슬픔과 의병, 공출을 잘해야 대동아전쟁을 이기고……, 조국독립은 신탁보다 반탁이……, 베 짜는 어머니도 선거장으로……, 무산대중인 노동자 세상이 다가와……, 미수복의 밤낮 바뀐 천하…… 민주화의 열풍……, 산업사회의 발전에 귀향차들…… .” 등의 영상을 다시 볼 수 있을 텐데……. 이제 물어 보아도 응답이 없고 알아보려 해도 알 길이 없다. 한 해 한두 번 찾는 고향이지만 내가 철들어 생활한 것은 겨우 조국광복 뒤 2~3년이다. 이때 겪은 일들만 해도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말 못하는 느티나무야 얼마나 쌓인 이야기가 많겠는가? 밤에는 낮에 끝내지 못한 옛 이야기로 꽃피우고, 가끔 듣던 마을 곳곳의 이름과 귀신, 혼불 이야기, 혼불 나간 3일, 3개월, 3년 만에 죽는다는데 놀라 홀로 귀가 못했던 그날 밤……. 이제 휘황찬란한 전깃불에 도깨비란 웬 말인가? 70여(1939)년 전 일제(日帝) 때,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약 없던 작별, 일본으로 떠날 때 연로한 할머님과 가족, 마을 어른들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말이 잊히지 않는다. 세월은 쏜 살과 같다더니 세대(世代)가 바뀌어 이제 고향을 찾아도 알아보는 이가 별로 없다. 느티나무야 너는 알겠지?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알아보는 둥 만등 묵묵히 지켜 보기만 하니 내 짝사랑이었단 말인가? 변함없는 너의 교훈만은 영원히 기억하리라. 근심걱정 없던 어린 시절이 천국이라지만 이제 생각하니 그 때가 이승의 극락이 아니었던가 싶다. (2012. 9. 2.) *삼굿…삼(대마)농사를 지을 때 임시 시설을 만들어 삼 다발을 삶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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