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지리산 산행/한숙자
페이지 정보

본문
잊지 못할 지리산 산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한숙자
한의사인 남편은 일주일 내내 환자들과 마주하다가 쉬는 날이면 대자연과 벗하며 산행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지리산 백무동을 거쳐 천왕봉 정상을 오르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친척 아저씨 두 분과 함께 간단한 취사도구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니 숲속의 공기는 상쾌하였다. 울퉁불퉁한 산길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한참 걷다가 점심때가 되어 참샘이란 곳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밀림지대 같았다.
산에서 만나는 등산객들은 “수고하십니다!”라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목적지를 물으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할 때는 힘이 덜 드는 것 같다. 그것은 산행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인정인 것 같다.
다섯 시간 남짓 걸어서 도착한 곳이 장터목산장이었다. 모두들 일출을 보려고 이 장터목산장에서 일박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여장을 풀고 저녁밥을 지어서 먹었다. 식사는 등산객 자신들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산장에서는 잠만 잘 수 있다. 8월인데도 지리산은 너무 높기 때문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 싸늘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점점 더 추워졌다. 안내원은 모포가 열장뿐이라며 우리 노인들에게 우선 4장을 배정해주었다.
잠자리가 비좁아 서로 지그재그로 누운 모습이 마치 짐짝을 쌓아 놓은 것 같았다. 한 번 누우면 돌아누울 수조차 없어 화장실도 갈 수가 없었다. 전쟁이 나면 피난길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일출을 보려고 새벽 4시에 모두 일어났다. 남편은 피곤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우리는 어둠에 싸여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워 앞사람 손전등만 바라보며 걸었다. 험준한 산인지라 한 발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면 그만일 것이라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며 정상에 닿았다.
이 순간의 정복감을 만끽하려고 산악인들은 땀을 흘리며 험준한 산을 오르는 모양이었다.
우뚝 솟아있는 바위에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정상에 도착한 여러 산악단체의 깃발들이 펄럭이며 각자의 소망을 비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깃발이 있어 물어보니, 고향인 전주에서 왔단다. 그들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함께 기원하자며 만세삼창을 선창하도록 나에게 권했다. 천왕봉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데 만세 삼창까지 선창하고 나니 너무도 기분이 우쭐해졌다. 사진도 함께 찍고 사진을 전달받으려고 서로 주소를 주고받았다.
산에 오른 산악인 모두가 마음속으로 “해야 솟아라, 붉은 해야 힘차게 솟아라!” 기원하며 일출을 기다렸으나 떠오르는 해는 볼 수 없었다.
천왕봉은 해발 1,915m로 높은 산인지라 하루에도 수시로 날씨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가 쉬운 게 아니라 했다. 일출을 볼 수 없어 아쉬워하며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산장에 도착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결혼생활 40여 년 넘게 살면서 손수 커피 한 잔 끓이지 않던 남편이 밥을 해놓다니, 더구나 산장가까이에 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물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물을 받아다 밥을 짓다니, 이 행복감을 어찌 표현하랴! 내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 찼다.
우리 일행은 짐을 챙겨 채석평전을 향해 하산길에 올랐다. 6‧25때 빨치산 대장이었던 이현상이 채석평전에서 빨치산을 훈련시켰다는 남편의 설명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 빨치산들은 해가 지면 지리산 아랫마을로 내려와 우리 농민들을 얼마나 괴롭혔던가?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6‧25때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듯 숙연해졌다.
채석평전에 올라가니 군인들이 헬리콥터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본 군인들은, 할머니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 왔느냐, 비행기를 타고 왔느냐,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물었다. 내 두 발로 걸어왔다는 나의 대답에 그들은 손뼉을 치면서 환호했다.
우리는 계곡을 따라 7시간쯤 걸어 넘어간 곳이 경남 진주였다. 거기서 차를 타고 전주에 도착하니 밤 11시였다. 7시간을 걸었건만 몸은 가뿐하고 상쾌했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는 우리 몸에 그만큼 좋은 엔돌핀을 솟아나게 해 준다. 1박 2일의 지리산 산행은 나로선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2012. 9.1.)
- 이전글느티나무는 알고 있으리라/정장영 12.09.02
- 다음글[최명희문학관] 전북지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 12.08.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