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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지켜주는 장대/오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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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0회 작성일 12-07-25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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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지켜주는 장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오형곤   1981년 3월 1일자로 나는 임실군 용운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부임하기 전 1월에 동료 직원 김종표 선생과 답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차가 다니지 않아 큰길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완주군 구이면 정자리에서 높은 산을 넘어서 약 80분쯤 걸어서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를 살펴보니 운동장은 길이가 50m정도이고, 교실 몇 칸이 전부였다. 방두 칸짜리 숙직실은 운동장 끝자락에 있고, 그 옆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숙직실과 경계가 되는 바로 밑에는 주민의 주택이 있었다. 3월에 부임하여 전주에서 출퇴근을 했다. 날마다 산을 넘어 배를 타고 다녔다. 배를 이용할 때는 강물이 만수가 될수록 좋았다. 그러나 물이 줄거나 겨울에 얼었을 때는 달랐다. 1983년도까지 3년간 근무하는 동안 첫해는 만수가 되어서 배로 출퇴근하기에 편리했다. 이듬해에는 가물어서 강바닥으로 약 60분쯤 걸어서 다녔다. 날씨가 가물어 물이 줄었을 때에는 물웅덩이에 물고기들이 많았다. 한 번은 양동이로 가득하게 잡은 일이 있다. 오가는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물고기를 잡는 재미도 있었다. 한 해에는 물이 얼어서 배가 다니지 않아 걸어 다녔다. 얼음위로 약 80분을 조심조심 걸으니 다음날에는 오금이 상당히 아프기도 했다. 강물이 얼면 마을 사람들은 운반비 안 들이고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었다. 나무썰매를 만들어 쌀 한 가마니정도는 싣고, 새끼줄로 끌고 막은 댐 버스정류장까지 올 수 있었다. 걸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공짜로 짐을 나르는 편리함도 있었다. 얼음 위로 다닐 수 있는 기간은 2월말까지였다. 3월 초순까지도 얼음이 녹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어부들이 빙어를 잡아 포대에 넣어 얼음위로 끌고 옮기는데 위험하게 보였다. 해빙이 될 때는 얼음이 밑에서부터 녹기 때문에 위에서는 녹는지 잘 모른다. 언덕에서 보면 물고기를 가마니에 넣어 끈으로 매어 얼음위로 끓고 가는데, 사람이 가는 곳은 밑으로 내려가고 지나가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매우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은 긴 장대를 하나씩 가로로 들고 다니는 것을 불 수 있었다. 이것은 만일을 위해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행동임을 알 수 있었다. 얼음이 꺼져도 긴 장대가 얼음에 걸려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부임하던 해 2월에 운암 장에 갔다가 거나하게 술에 취하여 돌아오다가 얼음이 깨져 두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다. 겨울에 얼음이 얼기 시작할 때는 위부터 얼지만 해빙기의 얼음은 밑에서부터 녹기 시작한다. 얼음이 깨지는 것을 보면 그 곳만 둥글게 깨진다. 사람이 건너다 얼음이 깨지는 것도 발을 딛는 자리만 둥글게 깨져서 그대로 빠진다. 걷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들어가다 한 번 빠지면 발이 강 밑바닥에 닿아야 위로 올라오게 된다. 이 때 올라 올 때에는 곧 바로 올라오게 되어 빠졌던 자리로 올라오지 못 하고 머리가 얼음에 부딪치게 되어 도로 물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반복되어 결국 익사하고 만다. 이러한 원리를 알기에 해빙기에 얼음 위를 걸을 때에는 긴 장대를 가로로 들고 다녔다. 그게 사고를 미리 대비하는 일이니, 장대는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도구가 아니겠는가? (2012.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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