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싸움/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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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싸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신구
“어, 아빠가 똥 쌌네!”
“……”
“엄마, 아빠가 싼 똥 쳐 먹어요.”
큰방에서 바보상자(TV)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던, 가는 귀 먹은 망백의 할아버지 귀에 좋은 소리는 잘 안 들리고, 쌍놈들이나 하는 웬 쌍소리만 들린다.
‘어허, 망할 징조로군……’ 그래도 좋다고 깔깔대고 웃으며 한바탕 야단이 났다. 지난 설날, 모처럼 서울과 대전에서, 아들과 며느리, 사위와 딸 그리고 손자들이, 큰 집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아 주머니가 두둑해진 가족들이 거실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고 스톱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칠순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30-40대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등 여섯이서 모처럼 한판 붙었다. 다른 때 같으면 서로 어려워할 처지들인데, 이 꽃판에만 둘러앉으면 스스럼이 없어진다.
누가, 시아버지가 똥 쌌다고, 시어미에게 쳐 먹으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어느 스포츠신문에, ‘우리나라 성인들이 여가시간에 가장 즐기는 게임이 무엇이냐?’ 고 설문조사를 해 보았더니,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꽃 판(일명:고스톱)놀이’가 선정되었다. 집에서나, 음식점, 심지어 외국여행 중 공항대합실, 국정을 논하는 국회에서도 3인 이상만 모이면 판을 벌인다는 기사를 보면서, ‘고스톱 공화국’이라고 하여 절로 숙연해 졌다.
‘고스톱’은 일본인이 고안해서 보급한 화투놀이다. 화투에는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과 월별축제, 갖가지 행사, 풍습, 선호문화, 기원의식, 그리고 교육적인 교훈까지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화투의 문화적 비밀 코드도 잘 모르면서, 심리적으로 우리민족의 분열과 노름꾼의 길로 달려가는 패가망신을 부추기는 그 저질놀이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탄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예로부터 우리의 놀이에 수투(숫자가 적인 패를 뽑아 우열을 가리는 투전)가 있었고, 민속놀이 대부분이 향토방위를 위해서 공동으로 무예를 연마하는 연무유희(鍊武遊戱)거나, 편을 갈라 돌 던지기, 편쌈, 놋다리밟기(도강무술), 등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한 놀이, 윷놀이 등이 있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작은 공간에서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문화로 발전되었다.
내가 어렸을 적, 마을 어른들이 즐겼던 우리 고유의 투전과 골패도, 미풍양속을 황폐화시키고, 패가망신을 가져왔던 기억이 난다. 우리뿐 아니라, 외국에 횡행하는 마작과 빠찡고, 포커 등도 우리의 놀이 문화와 비슷하다. 수투(노름:투전), 윷놀이, 고누도 내기를 해야 재미가 있는 데, 숫자놀이보다는 그림이 있는 화투가 그 일을 대신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듯하다. 원래 놀이(게임)는 사람의 말초적 욕심을 자극하여 끌어들이는 특징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 놀이를 어떤 방식과 심리적 배려하에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청구야담’에 보면 연암 박지원도 중국 출장 시 역관에서 비장들과 투전판을 벌였다고 한다. 실내 좁은 공간에서 오순도순 즐길 수 있는 놀이는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한가한 시간에 TV 를시청하거나, 아니면 즐기는 놀이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가끔 놀이문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곤 한다.
화투는 가까운 처지라도 마땅히 어울리기 힘들거나, 화두(話頭)를 찾기 어려울 때 관계설정 기회를 제공해 주며, 또 놀이를 통해서 가족간의 화목을 위한 촉매제도 되고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게 해 준다. 놀이(Gaming娛樂)와 노름(Gambling賭博)은 어원도 같은 백지 한 장 차이이며, 놀이로 보면 인체의 스트레스 해소와 스릴, 그리고 치매(우울증)예방에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내기(돈)가 걸리면 점유욕과 소유욕이 강해지고, 요행심(不勞所得)을 자극하여 불화의 씨를 돋울 수도 있다. 흔히 놀이를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면서 도박 심리를 자극한다.
내기가 없으면 재미가 없으니 작은 액수로, 방식과 형태를 개선하고, 용어도 순수한 우리말로 바꾸고, 다듬는 연구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에게도 세시풍속과 고유문화가 있으니, 전통을 기리는 내용과 방법을 놀이방식으로 학습시키듯이, 쉽게 이해하고 파급될 것이다. 전 국민이 즐기는 고스톱, 도박이 아닌 친선차원에서 하는 게임에, 내기는 작게 할수록 좋으며, 잔잔한 파도같이 승패에 흥분하지 않아야 좋은 인상을 갖게 해 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어어, 시아버지가 며느리 앞에서, 똥쌌다네!”
“하, 하, 하, 하, 하!”
“아버지가 싼 똥, 어머니가 쳐 먹었다네!”
“ 하, 하, 하, 하, 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앞에서, 아들과 딸과 며느리가, 이렇게 호방하게 웃고 어울릴 기회가 얼마나 있으랴. 놀이방법의 개선과 그 규모를 축소하며, 동방예의지국의 예절이 은연중 나타나는 방식을 개선한다면, 다소 건전한 놀이가 되지 않을까?
(2012.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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