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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한 선물/이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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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99회 작성일 12-05-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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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한 선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전주안공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5시,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보자기에 싸고, 어제 사다놓은 제물을 챙겨 승용차에 싣고 동산동으로 향했다. 산소 일에 대한 경험이 많은 형님을 모시고 가기 위해서였다. 형님은 반갑게 맞아주며 차에 올랐다. 평생 미루던 일을 윤달을 기다렸다가 실행하려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오겠다고 약속한 둘째딸 가족이 어제 왔다. 어버이날이 들어있는 주간도 되지만, 농사짓는 아비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서란다. 고추를 심어준다고 했지만, 지난주 수요일에 심었다고 해도 온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그들이 온다는 어제는 큰어머님 산소와 중백부(仲伯父)님 내외분의 산소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오지 말라고 했는데, 장인을 도와주겠다며 기어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 저녁 10시경 천안쯤에서 큰손자 건우가 내게 전화를 했다. 자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더니, 도착할 때는 잠에 취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예쁘고 귀여워 볼에 뽀뽀를 해줬지만 아쉽게도 반응이 없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소리에 세수를 하고서 사위를 깨우니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눈을 비비며 뽀뽀를 해주는 두 손자들의 인사를 받고 집을 나섰다. 한일장신대를 경유 새로 놓은 운암대교를 건너 4차선으로 잘 닦은 한적한 길로 강진을 향해 30여분 달렸다. 시원하게 뚫리기 10여 년 전 덕치초등학교로 1년 6개월 동안 출근했던 경험을 생각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참을 약속했던 익산의 생질과 사곡리의 생질 그리고 손자가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진행되는 상황으로 보아 오늘 일이 순조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 분을 하루에 치른다는 것은 무리지만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술을 좋아하는 동갑내기 익산 생질이 술을 한 잔 해야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어린양을 부려서, 한 번 더하고 마시자고 달랬다. 나도 목이 컬컬하여 술 생각이 났는데, 조카는 더했으리라. 두 참을 하고나니 중백부님의 관을 안장했던 자리가 나타났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일행들에게 술 한 잔씩 하자고 불렀다. 한 잔씩 딸아 주니 술이 넘어가는 소리가 늦었다는 듯 꿀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어서 중백부님의 묘소는 형님에게 사위와 함께 유골을 수습하도록 맡기고, 중백모님의 묘소에 삽질을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몰려 있어야 일도 되지 않고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서 선수를 친 것이다. 역시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중백부님의 유골수습이 끝날 즈음, 중백모님의 유골을 덮은 기왓장도 발견하였다. 50여 년 전 중백부님께서 아내를 이장했는데, 당신의 성격대로 꼼꼼하게 일하신 모습을 알 수 있었다. 내외의 인연인지 35년 전 돌아가신 중백부님의 유골과 보존상태가 비슷했다. 두 분의 유골을 중백부님의 묘소를 판 땅속에 유골을 쌓고 화장을 했다. 준비해간 번개탄이 모자라 사위를 데리고 강진에 가서 사다가 더 넣고 바짝 마른 소나무 가지도 넣으니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타오르는 불길에 두 분의 영혼이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가는 듯했다. 나는 다시 아버님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자식도 낳지 못하고 돌아가신 불쌍한 큰어머니의 봉분에 올라가 삽질을 시작했다. 사위가 쫓아와 삽질을 하려고 하기에 유골 수습을 하는 보조 역할만 하라고 임무를 주었다. 내가 일을 해보니 쓰지 않던 근육을 쓰면 근육통이 오래 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힘든 일은 가급적 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제일 어른인 내가 앞장서서 삽질을 했다. 다른 이들이 내 뜻을 알고 불평 없이 따라 주었다. 다들 아끼고 사랑하는 핏줄이 아니던가. “삼촌! 할아버지!” 하며 따르는 그들이 고마웠다. 조상님의 도우심인지, 일을 앞두고 주님께 기도를 드린 응답인지, 장방형의 큰어머니의 묘소자리에 있어야 할 유골은 흔적이 없고 불그레한 황토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땅이 좋았는지 유골이 흙이 되어 다음 일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형님께서 파헤친 큰어머니의 묘소 바닥에서 흙 몇 줌을 싼 뭉치를 주기에 나는 사위를 데리고 산의 위쪽으로 갔다. 가면서 준비해뒀던 제물을 가지고 갔다. 내가 만든 축문을 읽으며 천지신명님께 큰어머니의 영혼을 부탁하고 산등성이에 뿌려드렸다. 잊지 않고 제사는 모셨지만, 멀고 산소를 잘 모른다는 핑계로 한 번도 성묘를 하지 못했던 일이 뉘우쳐졌다. 부디 아름다운 산야를 벗 삼아 경관 좋은 곳을 여행하시며 평안한 안식을 취하시길 두 손 모아 빌었다. 또 화장이 끝난 중백부모님의 묘소 앞에도 제물을 차리고 참례자들과 무릎을 꿇고 제사를 드렸다. 결혼 초 아버님과 사별한 큰어머니, 딸은 넷이나 되지만 아들이 없어 산소도 종중에 위탁했던 중백부모님은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였다. 언제나 죄스럽고 꺼림칙한 일을 착한 작은사위와 함께 치를 수 있어서 좋았다. 앓던 이를 뽑은 기분이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돌아오는 도중 중앙시장에서 채소 모종을 사다가 밭에 심었다. 피곤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장인의 일을 거들어 주는 사위가 어찌나 고마운지 몰랐다. 피로를 풀고자 사우나에 갔으나 사위에게 목욕요금을 치르는 일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나에게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 나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처음부터 남에게 악하게 하지 않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장자의 가르침이 새롭게 느껴졌다. 자식들에게 받은 가슴 찡한 사랑의 선물로 행복을 되새기며 내일도 그들을 위해 기도는 계속할 것이다. (201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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