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산지의 신록/임영희
페이지 정보

본문
주산지의 신록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영희
눈을 좋아해서 처녀시절 한 때는 겨울이 좋았고, 봄에는 언 땅을 박차고 나온 싱그러운 새순을 보며 잔인하다는 4월의 봄을 기다리기도 했다. 봄이면 살구꽃 그늘이 좋았다. 어릴 적 동심의 아련한 세계로 추억여행도 할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기 손가락처럼 뾰족이 나오는 연둣빛 새순이 내 눈을 멈추게 했다. 연두색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누군가 나이 드는 증거라고 하던가. 그 말을 듣고 나는 흠칫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쯤 나오는 연초록의 잔치는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청송 주산지의 신비스런 왕버들나무의 모습은 내 기억을 떠나지 않으니 어찌할까. 주산지 주변에 안개가 덮이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었다.
벚꽃이 지고 나면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하면서, 수채화처럼 영롱하고 싱그러운 안개속의 주산지 왕버들을 떠올린다. 1720년쯤 조선시대 경종 때 하류지역의 가뭄을 막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주산지. 주산지는 여느 저수지와는 달리 산 속에 있다. 저수지 한 가운데에 왕버들이 있는데 그 나무는 진짜 주산지의 안방마님이 되었다. 저수지 인근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솔부엉이 그리고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인 하늘다람쥐와 수달이 다정하게 잘 지낸다.
주산지는 3백년을 지나오면서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밑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호수 안에는 왕버들나무들이 살고 있는데 거의 1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것들이다. 봄철 농업용수로 쓰려고 물을 빼낼 때는 바닥까지 드러나게 된다. 그럴 때 왕버들나무들은 온전히 숨을 쉰다고 한다.
이곳 주산지에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면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느껴지고, 봄을 여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어 더욱 좋다. 그곳에서 절벽을 올려다보면 구멍이 난 바위가 있다. 나무들이 너무 연로하다 보니 가끔 외과수술을 받기도 한다. 주산지에 왕버들나무들이 연초록 잎사귀로 덮이는 날, 내가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주산지는 봄의 전령이 게으름을 피우는 곳이다. 다른 지역은 더위가 시작되는 5월 말쯤에야 봄이 찾아오니 말이다. 이때부터 미련이 남아 언제나 그 먼 곳을 가볼 수 있을지 계획만 세우다가 벌써 여러 해가 흘러 버렸다. 인터넷에서나 주산지의 봄 풍경을 보고 만족하며 마음을 달래야 한다. 그러나 다시 주산지를 찾고 싶다는 꿈은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2012. 4. 28.)
- 이전글칭찬은 얼굴에 웃음을 그리는 화가/김학 12.04.29
- 다음글추억의 노래들/김학철 12.04.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