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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를 모시고/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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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52회 작성일 12-04-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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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를 모시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12대 영(鈴)자 할아버지의 시제를 모셨다. 사초에 김종직 선생의 조의제문을 실어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탁영 김일손 할아버지의 손자분이시다. 경상북도 청도가 고향이지만 전라도 남원으로 유배를 오셔서 그곳에서 눌러 살게 되었다. 청도군 자계서원의 탁영선생신도비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태인으로 이사 오셔서 사시다 돌아가시니 묘소는 김제시 부량면 신두리에 있다. 해마다 4월 첫 일요일이 시제 날이다. 오래 전에는 식목일에 모셨으나 그날이 휴일에서 제외되자 일요일로 바꾼 것이다. 자손이, 적어도 몇 십만 명은 될 텐데 겨우 10여명이 모여 묘제를 지낸다. 안타까운 일이다. 몇 년 전만해도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일가들이 관광버스를 불러 타고 왔었는데 지금은 겨우 몇 사람만 참석한다. 열이 식은 것인가 아니면 조상숭배 사상이 희박해진 탓인가. 산세를 보니 호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호남기맥이 모악산을 솟구쳐 세우고 상두산을 거쳐 서쪽으로 굽이쳐 흘러왔다. 동진강줄기인 벽골제 코앞까지 뻗은 줄기가 맺힌 곳이다. 주산을 되돌아보는 회룡 포란혈이다. 명당자리라 자손이 번성한 것 같다. 넷째아들이 호종공신 가성군이니 복을 받은 어른이다. 나는 큰아들의 자손이다. 종친회장이 같이 가자고 하여 4명이 만나 참석했다. 모이고 보니 내가 항렬이 제일 높다. 아산에서 조카 항렬인 93살의 영곤 씨가 아들 종현과 같이 왔고, 인천에서 손자 항렬의 창호가 딸 둘에 사위와 외손자를 데리고 참석했다. 전주의 78세 된 인선, 금구에서 성곤이 참여하여 문곤 회장의 집례로 제사를 모셨다. 제물은 묘 근처에 사는 낙곤 집에서 준비했다. 위토답 한필지로 제물 값을 대신하는데 안식구들의 수고가 많았다. 장보기를 해서 장만하느라 며칠은 걸렸으리라. 수고하셨다는 말 한마디로 고마움을 표할 따름이다. 차일을 치고 제물의 진설을 마쳤다. 참여한 사람 모두 의관을 갖추었다. 제복으로 도포와 행전, 유건을 차려 입었다. 일렬로 선 다음 내가 초헌관이 되어 분향재배했다. 다음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 집사가 잔을 주었다. 받아 들고 집사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향불을 세 번 쏘이고 잔을 올리면 축관이 축을 읽었다. 축이 끝난 다음 또 재배했다. 다음에는 아헌관이 나와 헌작하고 종헌관이 마지막으로 예를 올렸다. 숭늉을 올리고, 세 숟갈의 메를 말아 수저를 담근 다음 묵념을 했다. 끝으로 모두 재배를 하고 마쳤다. 방석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나이 많은 조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처음 참석했는데 다음에도 오겠다고 했다. 오늘 참석하여 아헌도 하니 기분이 좋고 마음이 흐뭇해서 내년에도 꼭 오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음복하자며 잔을 권하니 기쁘게 받았다. 우리 집안은 술 못하는 사람이 없다며 몇 잔 권했다. 참석해서 기뻐야 또 오지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누가 참석할까. 서로 당부하고 격려하여 참석하기로 했다. 점심을 마치고, 차일을 걷고 텐트를 접으며 방석을 치우는 일들을 서로 도우니 모두 즐거워했다. 종친회장은 올해 85살이시다. 입이 자꾸 말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음식 맛이 없고 기운이 떨어진단다. 걱정이다.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회장을 하면서 시제를 주관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오늘도 나에게 회장을 물려주려 하는데 맡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오랫동안 참여하여 내용을 잘 알아야 하는데 참석한 지 오래되지 않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60대의 똑똑하고 성실한 젊은이를 찾아보라 했는데 없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시제도 지내지 못하고 말 것 같다. 시제에 참석하는 것은 자손의 마음이다. 아무리 할아버지 묘제라고 하지만 마음이 없으면 인천에서 아산에서 올 수 있을까. 이끌리는 무엇이 있고 가야겠다는 정신이 앞서니까 오는 것이다. 오늘 참석한 일가들이 참 고맙다. 참석하지 않는다고 누가 호령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도록 만든 게다. 젊은 후손들이 참석해야 하는데 내 아들부터 찾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같이 가자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느 집이나 같은 형편이니 묘제는 늙은이들이나 몇몇이 참석하는 꼴이다. 우리 집안뿐만 아니라 어느 집안이나 같은 현상이란다. 남은 일을 조카에게 맡기고 한 봉지씩 싸주는 선물을 들고 전주로 향했다. 할아버지께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 2012. 4.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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