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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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洑)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요즘은 수리시설이 잘되어 농사짓기가 편리하다. 높은 밭에서도 관정을 뚫어 물을 끌어올린다. 물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일은 없다. 옛날 우리 고향에서는 모를 내려면 물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었다. 발동기나 무자위로 품어 올리려 해도 물이 없어 모를 심지 못했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때가 많았다.
냇물을 막아 논에 물을 대는 보(洑)가 있었으나 못자리에 쓰고 나면 바닥이 났다. 보는 흐르는 냇물의 중간지점을 가로막아 물이 고이게 하는 시설이다. 소나무를 잘라다 비스듬히 눕혀 언덕 높이만큼 차곡차곡 쌓았다. 밑쪽 굵은 부분은 뒤로하고 가는 끝은 바닥 쪽으로 하여 쌓으면 기울어졌다. 거적을 엮어 그 위에 덮은 다음 흙을 부어 물이 고이게 하였다. 물이 조금씩 새지만 점점 고여 몇 백m 위까지 찼다. 그 물을 작은 수로로 논에 댔다. 이런 보가 있어도 수량이 적어 모내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못자리에나 쓰였다.
어려서 보를 막는다고 부역에 나오라 하면 짚 다발을 짊어지고 나갔다. 소나무를 져오는 젊은이, 거적을 엮는 노인, 소나무를 쌓는 일꾼 등 서로 협력하여 일을 했다. 나는 보 밑에서 흙을 짊어다 거적 위에 부었다. 어른들 몇은 흙을 발로 꼭꼭 밟아 물이 새지 않도록 다졌다. 봇물을 대는 논의 주인들은 모두 참여하였다. 나무를 사오는 돈은 추렴을 하였고, 남는 돈으로 막걸리를 받아다 새참을 먹었다.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넘쳐흘렀다. 비온 뒤에 가보면 물이 흐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솨’‘솨’하는 것 같았다. 홍수가 날 정도가 되면 압력을 이기지 못해 보가 터졌다. 애써 막아놓은 보가 없어져 버려 아까웠다. 터지면 다시 막아야 하니까 터지지 않기를 바랐다. 모내기를 한 뒤에는 물 걱정이 없으므로 터져도 그냥 두어 다음 해에나 막았다.
날이 가물어 수위가 낮아지면 논에 댈 수가 없었다. 그러면 두레박으로 품었다. 나도 어머니와 같이 두레박질을 하여 못자리에 대었다. 무자위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대개 부잣집에서나 썼다. 그 시절 농사에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있었다.
우리 고향에도 여러 곳에 보가 있었다. 우리 보는 둔보이고 중보, 싯보, 진보, 청수보 등이 있었다. 만경강의 지류 마산천이 흐르는 곳에 있는 보들인데 유역의 논에 물을 대는 역할을 했다. 농사를 지으려고 자생적으로 보를 막았으며 오랜 전통이 있었다. 조상 대대로 이런 보를 막아 농사를 지은 것 같았다.
보는 냇물을 건너다니는 다리 역할도 했다. 나도 그 둔보를 건너 나무하러 가기도 했고 외가에 오갈 때 건너다녔다. 장뜰과 재남리에서 쇠평이로 가는 길이었다. 보를 건너다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딸네 집에 부고를 전하는 이도 건넜고, 아이가 곽란이 나서 의원을 부르러 가기도 했을 게다.
그 보는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고 경제개발이 되면서 사라졌다. 지금은 철근콘크리트로 막아 물이 많이 고이며, 비가 오면 수문을 열고 닫아 무너지지도 않는다. 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본다. 어렵게 보를 막아 농사를 짓던 시절이 아쉽기만 하다. 지금 그런 논에서 농사를 한 번 더 짓고 싶다.
요즘 4대강에 여러 개의 보를 막는데 거의 완공단계라 한다. 찬반논란이 자자하나 잘 했는가, 잘못했는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물이 고이게 하려고 강바닥을 깊이 팠다는데 그 것만은 잘못한 것 같다. 비가 많이 내리면 토사가 밀려와 메울 텐데 얼마나 견디겠는가.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도록 두는 게 낫지 않았을까. 논밭에 대는 물도 아니고, 공장을 돌리는 데도 쓰이지 않는다면 필요 없는 일이 아닐까. 많은 예산을 들여 시행한 공사이니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지금과 같은 수리시설이 얼마나 고마운가. 고생하며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은 어려운 시절을 잘 알 것이다. 편하게 살아온 젊은이들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잘 모른다. 이런 글이라도 읽어보고 옛날과 비교하여 나라 발전에 고마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피땀을 흘려 일하여 나라를 발전시킨 어른들에게 감사해야 하리라.
( 2012. 3.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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