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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된장아/김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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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87회 작성일 12-03-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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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된장아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학철 나는 오늘도 아침밥을 먹는다. 재래식 토종된장에 매콤한 풋고추와 애호박 그리고 두부를 넣어 펄펄 끓이는 뚝배기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나를 반긴다. 밥그릇 우측에는 내가 좋아하는 된장을 엷게 풀어 마른새우를 넣고 끓인 아욱국이 있는가 하면, 또 살짝 데쳐 역시 생된장으로 갓 버무린 머우순의 쌉싸레하고 상큼한 맛이 나의 입맛을 돋운다. 이렇듯 나의 밥상에는 된장과 관련된 음식이 주류를 이룬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즐겨먹는 된장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추억이 많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별 반찬이 없던 때라 주로 밥에 김치, 깍두기, 된장국을 먹으며 자랐다. 연중 명절 때나 제사 또는 모내기와 추수할 때 등 특별한 날에만 겨우 고기와 생선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된장국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쯤으로 알았다. 또 그 당시 우리 동네는 별로 잘사는 집이 없었다. 다들 못 먹고 못사는 시절이라 그런지 사람을 만나면 으레 한다는 인사말이 “밥 먹었냐?”였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이 밥 먹었냐고 물으면 시래기 된장국을 먹은 나인지라 그냥 “응 먹었어.” 라고만 간단히 대답했다. 그런데 1년에 몇 번, 어쩌다 아버지가 장에서 쇠고기 한두 근 사 오셔서 국 이라도 끓인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응, 나 오늘 아침 쇠고깃국에 밥 말아 먹었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참으로 못 먹고 못살고 또 자랑할 것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그랬던지 그것 도 자랑이라고 늘어놓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다. 또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동네 뒷동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왼쪽 팔뚝을 왕벌에 쏘여 퉁퉁 부어올랐다. 울면서 집에 오니 어머니가 장독에서 된장을 한 수저 퍼다 벌 쏘인 부위에 바르고 호박잎으로 싸서 지푸라기로 동여매준 일이 있었다. 하루쯤 지나니 다행히 통증이 가라앉았다. 나는 통증이 가라앉기가 바쁘게 통증을 가시게 한 된장의 은공은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그 호박잎을 떼어버리고 상처부위에 붙어 있던 거무튀튀한 된장찌꺼기를 무슨 더러운 오물이라도 되는 듯 빨래비누로 씻고 또 씻었다. - 1 - 그 뒤 4학년 때 8월 어느 날, 우연히 장독대의 도가니뚜껑이 열려 있기에 무심결에 그 안을 들여다 본 일이 있다. 그 속에는 된장이 들어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순간, 고리타분하고 퀴퀴한 역겨운 냄새와 더불어 거무튀튀한 흑갈색 된장이 들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뿔싸 구더기가 여러 마리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순간 나는 저것으로 이제까지 국과 찌개를 끓여먹었구나 생각하니 입맛이확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땅에 태어나 그걸 먹고 자란 나도 이럴진대 아마 도 이 광경을 위생관념이 투철하다는 서양 사람들이 봤더라면 아연실색 기절초풍하고도 남았으리라. 또 된장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구두가 투박하게 생겼다든지 멋이 없어 보이면 꼭 된장구두 같다느니 사람의 몸집이 날씬하지 못하고 투박하게 보이면 꼭 된장 폼이라느니, 화가 나서 상대방과 다투기라도 하다보면 “낯반대기에 된장이나 쳐 바를 놈”이라는 등 꼭 부정적이거나 상대방을 비하할 때 자주 인용되었던 기억이 있다. 또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정이고 음식점이고 간에 고기나 생선반찬이 한 가지라도 식탁에 올라오면 된장국은 아예 밥상에 얼굴조차 내밀지 못하기 일쑤였고, 더욱이 시내 중산층 이상 부유층이 이용하는 고급음식점은 아예 밥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였다. 그런데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든지 오랜 세월 천대받고 설움 받던 된장도 드디어 햇빛 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1980년대 중반쯤 되었을 때다. ‘된장에서 항암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당시 암은 한 번 걸리면 사망으로 직결된다는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어 뭇사람들로부터 공포의 대상이었으니 이 항암성분 검출 발표는 단연 세인들의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몸에 좋다면 된장이 아니라 뱀, 개구리는 물론 지네, 지렁이, 굼벵이까지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이 우리민족이 아니던가. 이때부터 부유층과 소위 지체 높은 분들까지 너도나도 된장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갖게 되어 마침내 고급음식점 밥상에까지 된장국이나 된장찌개가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 2 - 그 무렵 발표된 대중가수 배일호가 불러 히트한 ‘신토불이’란 가요는 된장 을 김치와 고추장과 더불어 일약 우리 밥상의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였다. 그 노래는 또 그간 무명가수로 전전하던 배일호를 일약 국민가수로 올려놓았다. ‘우리 몸엔 우리 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깎두기. 잊지 마라 잊지 마. 너와 나는 한국인 신토불이신토불이 신토불이야.’ 물론 그 노래의 작사가와 작곡가의 힘도 크다. 하지만 작사가 역시 이 땅에 김치나 된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런 좋은 노랫말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이걸 파고들면 가수 배일호는 그간 천대 받던 된장을 밥상위의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된장 역시 김치 고추장과 함께 배일호를 가요계의 스타로 만들어 준 셈이다. 따라서 배일호와 된장과의 관계는 서로 상부상조관계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인 듯싶다. 또 된장 맛은 음식점의 성공을 좌우하기도 한다. 내가 잘 아는 전주 변두리 어느 보신탕집 D식당은 변두리에 있는데도 항상 손님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 여름철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비결을 물으니 고기도 좋은 걸 쓰지만 집에서 직접 담근 우리 콩으로 만든 된장을 사용하는데 무쇠 솥에 탕을 끓일 때는 국산 천일염과 함께 이 된장을 몽땅 넣어 간을 맞춘단다. 그래서 그런지 국물 맛이 일품이고, 풋고추나 생마늘을 찍어먹는 생된장 맛도 아주 그만이다. 옛날부터 ‘그 집 살림살이를 알려면 장맛부터 보라.’는 말이 있다. 된장 맛 으로 성공한 D식당을 보니 그 말도 빈말은 아닌 듯싶다. 학계의 된장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옛날 삼국시대부터 간장과 된장으로 분리되었는데 삶은 콩을 숙성 발효시켜 콩 속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란다. 된장의 효능으로서는 ‘해독작용’ ‘항암효과’ ‘고혈압예방’ ‘간 기능 강화’ ‘황산화 효과’ ‘노인성 치매예방효과’ ‘소화제 효과’ ‘골다골증 예방’ ‘당뇨개선’ ‘비만, 변비 예방’ ‘심장병과 뇌졸중 예방’ 심지어 ‘기미 주근깨 제거’ 등 무려 12가지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자 이 정도면 된장은 식품이라기보다는 ‘만병통치보약’으로 분류하든지 또는 ‘한국 토종 먹거리 문화재’로 문화재청에 등재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 3 - 농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도 현재 국내에는 무려 1,325개소의 장류 생산업체가 있는데 이들 업체에서 생산된 장류 중 된장의 경우 연간 99,584톤에 1,376억 100만원의 매출액을 올렸다는 통계다. 생산량의 대부분은 국내시판이고 나머지는 중국, 일본 및 동남아시아는 물론 멀리 미국, 유럽까지 수출하여 한국 동포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이용하고 있다고 하니 된장의 세계화도 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국내기업체에서 생산 판매되는 된장의 대부분은 단기간에 생산한 개량식 된장이 많다. 그러나 나는 1년이 걸리더라도 옛날식으로 메주를 띄워 간장을 담근 다음 간장을 떠내고 남은 한식 된장을 좋아한다. 우리 집은 해마다 한식 간장과 된장을 담가 먹고 있다. 어릴 때 봤던 된장 속에 구더기가 있어도 좋고, 또 색깔이 거무튀튀해도 좋다. 왜냐하면 개량식 된장은 색깔은 노르스름하니 보기 좋지만 단순한 맛만 난다. 반면에 한식인 재래식 된장은 색깔은 안 좋아도 찌개나 국을 끓이면 그야말로 옛날 된장 고유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된장! 그 이름도 어찌 보면 촌스럽고 천박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젠 버젓이 밥상 중앙 상석을 차지하고도 결코 뽐내거나 으스대지 않고, 또 모양을 예쁘게 치장하지 않는다. 같은 장류라도 고추장은 된장에 비해 색깔도 예쁘고 또 예쁜 사기단지 속에서 호강하지만 된장은 예나 지금이나 기껏해야 양철동이 아니면 플라스틱 차지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한쪽 후미진 구석에 쌓아놓기 마련이다. 된장은 오늘도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불러만 준다면 기꺼이 달려가 펄펄 끓는 물속에도 풍덩 들어가고 때로는 날것인 채로 기꺼이 사람들의 좋은 영양식이 되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천대했던 된장에게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한마디 꼭 해주고 싶은데 아둔한 나로서는 겨우 이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고맙다 된장아 그리고 대한민국과 함께 영원하라!” (2012. 3. 23.)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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