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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새겨진 글자/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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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32회 작성일 12-03-07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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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새겨진 글자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우수가 지났어도 영하의 추위는 계속된다. 등산복을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어떤 영감이 나타났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세히 보니 낯익은 얼굴이다. 분명 내 얼굴인데 어쩌면 저렇게 볼품이 없을까, 내가 아니라 남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세상의 온갖 고뇌를 혼자 겪은 꼴이 아닌가. 자세히 살피니, 이마의 주름살은 석 삼(三)자가 분명하다. 마을 앞 서마지기 밭고랑을 닮기도 했다. 가까운 밭이라 자주 찾아가 엎드려서 그려질 만하다. 한 획은 심한 추위에 이십 리를 걸어 통학할 때 찡그려서 생긴 것 같고, 다른 한 획은 일요일이면 쉬지 못하고 논밭에서 일할 때 힘들어서 그어진 것이리라. 마지막 한 획은 아들딸 다섯이나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느라 뒷줄이 당겨 패였을 게다. 너나나나 도토리 키 재기로 다 그렇게 사는 때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잔주름이 생길만한 지난날이었다. 코언저리의 팔(八)자는 일 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살 같은 세월이 아쉽다고 그어준 흔적이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힘이 줄어드니 조심하라는 표시이고, 마음만 젊지 몸은 아니라고 경고해주는 결이다. 앉았다가 벌떡 일어서지도 못하고, 손부터 짚고 힘쓸 때 깊어지지 않았나 싶다. 환갑 무렵만 해도 전라도 지리산에서 강원도 향로봉까지 한 발 한 발 옮겨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아무리 높은 뫼도 오르고 싶어 전국의 이름난 산을 4백 개나 올랐다. 삼천리금수강산을 강원도 양구 땅만 빼고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이제는 힘이 줄어 안방차지가 편하다. 조심하라고 얼굴에 그어준 글자려니 싶다. 입가에 그어진 팔(八)자는 팔십이 가깝다고 새겨진 훈장이다. 평균 나이가 80이라니 그에 맞추려고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걸 축복해주는 상(賞)이다. 위의 팔자와 아래의 팔자를 합하니 팔십팔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만큼만 살다 가면 흡족하리라. 요즘 형편으로는 노후 걱정도 없고, 마음이 편안하니 그 정도는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점(占)자는 웬 표시인고.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점찍어 놓았는가. 여기저기 찍힌 점이 보기에 좋지 않다. 흰쌀에 굵은 콩을 놓아 지은 밥과 같다. 저승꽃이 피었다고 오래 살리라는 덕담도 있지만 듣기 좋은 치례다. 몇 년 전에 쌈짓돈을 모아 레이저로 쏘았어도 자국이 남아 있다. 젊은이 같으면 얼굴 고쳐주는 대장간에 돈 가져다 줄 차례다. 부모님이 주신 얼굴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이 효도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효(孝)보다 미(美)가 앞서는 세상이다. 번데기도 아닌데 눈가에 주름을 잡고, 펑퍼짐한 야산 코를 뾰족 산으로 솟구치게 했다. 네모난 턱은 v자로 깎아내고, 처진 주름살도 당겨 묶어 평지를 만든다. 거기에다 바르고 두드려 습지를 이루니, 이게 누구인가 알아보기 어렵다. 얼굴은 그 사람의 축소판이다.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왔으며, 지난 세월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착한 얼굴이 되고, 악하게 산 사람도 그대로 그려진다. 편하게 산 사람과 고생하며 산 사람도 그 흔적이 얼굴에 새겨진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저절로 나타나니 필연적인 인상을 누가 고칠 수 있을까.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살아온 대로 나타나니 어찌 자기의 책임이 아니랴. 내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내 책임이다. 거슬러 올라가 지울 수는 없다. 다만, 남은 세월을 살아가며 남에게 호감을 주는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좋은 인상이 되었으면 한다. ( 2012. 2.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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