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편지/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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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편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매서운 북풍이 방한모를 눌러쓴 나의 두 뺨을 모질게 훑으며 지나갔다.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정초正初의 초저녁 날씨는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고압선 전봇대 꼭대기에서 '번쩍 피지직'하며 불똥이 튀었다.
소대 지하 벙커의 허술한 판자문을 밀고 들어서니 호야 등의 흐릿한 불빛에 거뭇거뭇한 소대원들의 얼굴이 하나둘 드러났다. 야간순찰 근무준비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소대장님, 위문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내무반장 이 하사가 편지꾸러미를 내밀었다.
“이 하사가 고루 나눠주도록 하지.”
“소대장님, 애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쓸 만한 여고생 편지는 사단에서 다 잘라 먹고, 나머지는 연대, 대대에 떨어지고 저희 소대엔 모조리 초등학교 애들 것뿐이라니까요.”
“원 그럴 리가…….”
나는 백여 통 남짓 되는 위문편지의 발신인 쪽을 대충 훑어보았다. 내용을 읽어보고 싶은 편지는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어르고 달래어 병사들에게 두 통씩의 편지를 나누어주었다. 다음날 저녁까지 꼭 답장을 써서 검열을 받도록 하고 말이다. 새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담배 한 대를 태웠을까, 강 병장이 실실대며 다가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소대장님, 딱 한 통이 남았어요. 더 받겠다는 애들이 없으니 어쩝니까?”
“그래, 알았다.”
노란 봉투에 연필로 끼적거린 꼬맹이의 글씨였다.
‘월남에 계신 국군 장병 아저씨께’제목부터 낯설었다. 당시 월남전에 청룡, 맹호부대가 파견되어 용맹을 떨치던 시절이라, 군인 하면 이들을 연상하는 게 당연했다.
‘이름은 남자 같지만 사실은 여학생이에요.’그러고 보니 이름이 오정수이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겠다. 차츰 나는 정수의 솔직하고 풋풋한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옛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정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월남에서 싸우고 계신 국군 아저씨들의 용맹한 활약상을 듣고 가슴 뿌듯했으며, 함께 위문편지를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신은 예쁘지도 않고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는 시골소녀지만, 꼭 답장을 받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오래 전에 띄운 나의 위문편지를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며, 나 역시 한 번도 답장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정수에게 답장을 썼다.
‘친애하는 정수에게!’
우선 월남에서 공산군과 싸우는 아저씨가 아니어서 미안하다. 나는 동부전선의 최전방을 지키는 소대장이란다. 네 편지는 마지막에 내게 전해졌다. 솔직히 말해 쓰레기통에 버릴 것 같아 편지 뜯어보기를 망설였단다.
나도 정수처럼 위문편지를 여러 차례 써 보냈지만, 누가 받았는지 한 번도 답장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위문편지는 으레 그렇게 형식적으로 쓰는 것이며, 친구의 것을 베껴 써도 괜찮은 것으로 알았다. 답장은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라 생각했지. 그러나 정수의 글을 읽는 동안 내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꼭 답장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편지지 석 장에 가득 글을 쓰고, 북녘 땅을 배경으로 철모 쓴 사진을 한 장 골라 동봉하였다.
다음날 나는 소대원들의 편지를 일일이 검사하였다. 답장을 쓰지 않은 병사들이 많았고 내용도 마지못해 쓴 것이 대부분이어서 실망하였다. 나는 잘 타일러 답장을 다시 쓰게 하여 전 소대원들의 편지를 발송하였다. 물론 전국 각지의 초등학교 꼬마들한테 말이다.
두어 주일 가까이 지난 뒤 정수의 편지를 받았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편지 한 장을 가져와서는,
“여러분들이 보낸 위문편지에 답장이 왔네요.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함께 읽어보도록 해요. 어때요?”
물론 모두 입을 모아 "좋아요." 했단다. 선생님은 편지를 한 줄 한 줄 읽어갔는데 이름은 끝까지 밝히지를 않았다. 누구에게 온 편지일까? 저마다 가슴을 졸였는데 막상 정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는 까무러칠 뻔했다는 것이다. 그간 남의 주의를 끌지 못한 자신이 갑자기 신데렐라가 된 양 우쭐해졌고, 모두 다 부러운 눈치였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편지를 돌려가며 읽었고, 사진은 다 구겨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담임선생님이 어여쁜 처녀 선생님이라고 강조하면서, 지난 소풍 때 친구들과 찍은 단발머리 꼬맹이들의 사진을 부쳐왔다. 이중에서 제일 얌전한 아이가 자기니까 찾아보라고 추신을 달았다.
이제는 50대의 중년이 되었을 정수를 생각하며 나는 지금 옛 전우들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고 있다.
(201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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