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를 곁에 두고/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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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를 곁에 두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전주 한옥마을의 술박물관에 가면 계영배(戒盈杯)가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경계하려고 특별히 만든 잔이다. 절주배라 부르기도 하는데 70% 이상 따르면 술이 밑으로 새어 없어지는 잔이다.
술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우연히 그릇에 담긴 밥 덩어리가 효모에 의하여 발효되어 생긴 액체를 마시니 취하고 맛이 좋아 즐기기 시작했을 거라 전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특한 술을 만들어 마시는데 기후 풍토에 알맞게 술을 만든다. 그 재료도 가지각색이다. 짐승의 젖과 곡식을 이용하기도 하고, 과일을 쓰기도 한다. 만드는 기간도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 십 년 만에 먹는 것도 있다.
술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마시는 사람이 많고 의식용으로 사용한다. 제사는 술잔을 올리지 않고는 지낼 수 없으며 애경사의 손님 접대에는 으레 술이 따른다. 친구 간에 정을 나눌 때도 술이 이용되고 모르는 사람과 거래를 틀 때도 꼭 있어야 할 음료다. 1년에 소비하는 양은 아주 많으며 거기에서 거두어들이는 세금도 무시할 수 없다.
술을 즐기는 사람치고 과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처음에는 한 잔 두 잔 하다가 거나해지면 권하는 잔에 손을 내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세상이 내 것 같고 부끄러움도 염치도 사라진 기분에 더 마시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그러다가 술이 넘치게 된다. 나도 젊어서 술을 마실 때 몇 번 실수한 일이 있었다. 정신을 잃어 몇 사람이 떠메고 온 일도 있고, 논두렁길을 걷다가 논에 빠져 옷을 버린 일도 여러 차례였다.
조선시대 우명옥이라는 도공이 있었다.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광주분원의 도공이었다. 그는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유명해졌고 많은 재산도 모았다. 우쭐해진 도공은 시기하는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모은 재산을 탕진한 뒤에야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스승에게 돌아와 날마다 목욕재계하고 연구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계영배를 만들었다. 술을 삼가고 자제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에서였다.
이 술잔을 당시의 거상인 임상옥이 갖게 되었는데 그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욕심을 다스려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서 가르침을 얻어 시를 한 수 읊었는데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이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고 읊었다. 인간의 한없는 욕망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사례다.
중국에도 이 계영배가 있었다. 과욕을 경계하려는 것이었다.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倚器)에서 유래되었다. 제나라 환공은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宥坐之器)이라 했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옆에 두어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 한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아흔아홉을 가지면 백을 가지고 싶고 구백구십을 가진 사람은 천을 채우고 싶어 한다. 옛날에 사대부가의 양반들은 나라에서 받은 땅을 소작을 주어 소출의 반까지 거두어 가기도 했다. 뱃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상민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배만 채웠다. 지방 관리들도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 가니 백성들은 살아가기 어려웠다. 요즘도 부자는 가진 재산을 투자하여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국민은 더 어려워져 가는 것을 보면 계영배가 주는 가르침이 잘 사는 사람에게 필요할 것 같다. 경주 최 부자집의 베품과 구례 운조루의 구휼덕행이 다시금 떠오른다. 더불어 잘 살아가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가진 자가 베풀 일이다.
채근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는 가르침이다. 항상 잔이 차기를 바라는 우리네 중생들이 깨우쳐야 할 이치다. 이러한 가르침이 깃든 잔이라 선물로도 이용한다. 미국의 동아태차관보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에게도 우리나라 정치가가 선물로 주었다. 베이징에서 북한 측과 회담을 하는데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자 계영배를 비유하여 욕심을 버리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풍요로운 물질 속에서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다가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잔이다.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가며 자족할 줄 아는 지혜를 갖도록 일깨워주는 교훈적인 잔이다. 계영배를 하나 구해 옆에 두고 넘쳐흐르는 욕심을 자제해 볼까 한다.
( 2009. 9.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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