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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수학여행/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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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1회 작성일 11-10-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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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수학여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예전에는 학교를 졸업하는 해 가을에 수학여행을 갔다. 말 그대로 학업의 연장이었다. 수학여행은 기다리며 준비하는 재미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런 추억이 있어선지 성인이 되어서도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요즘엔 2학년, 또는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간다. 그러니 졸업을 앞두고 또 진짜 졸업여행을 가자고 학생들이 졸라댄다. 수학여행의 이름은 사라졌다. 현장체험학습이라고 하던가. 그런데 여행 목적지가 마땅치 않다. 이미 초등학교 때 제주도를 다녀 오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참으로 많이 변했다. 이제 세계적인 추세를 도외시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다. 초등학교 때는 서울이 목적지였고, 중학교 때는 경주로 갔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는 제주도로 여행을 갔는데, 나는 가지 못했다. 그때 갔었더라면 처음으로 여객선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때였고, 나중에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어른들께 미리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1962년 봄, 서울에서 처음으로 산업박람회가 열렸다. 정부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조국의 발전상을 알린다는 취지로, 학생들의 관람을 적극 권장했다. 나는 두 번째로 서울 나들이를 했다. 그해 가을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또 보내달라고 조를 염치가 없었다.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른들껜 일언반구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의 수학여행은 서울, 그리고 경주가 전부였다. 서울 여행은 다만 헐려버린 중앙청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을 뿐이다. 경주 수학여행 때는 잊지 못할 일들이 있었다. 경주에 가려면 신태인에서 대전까지 호남선 열차를 타고, 대전에서 경부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환승이 쉽지 않았다. 대전에서 세 시간 가량 출발이 지연되어 역 구내에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인솔 선생님께서 알아보고 가까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 '벤허'를 관람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잊고 벤허를 보게 되었다. 꼭 그렇게 하라고 기차가 늦어진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대형극장에서 웅장한 스케일의 영화를 감상했으니, 그 감동은 매우 컸다. 원형경기장에서 펼쳐진 전차경주는 영원히 잊지 못할 명장면이었다. 영화 상영시간은 예상보다 길었다. 불야불야 대전역에 도착하니 경부선 열차는 이미 기적을 울리며 출발 직전에 있었다. 너도나도 무질서하게 기차에 뛰어오르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역무원들이 사고가 날까봐 소리를 지르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 일행들은 정해진 좌석도 없이, 이곳저곳에 모여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인원을 점검하고 확인하면서 선생님들은 분주하였다. 승객들에게 조금 창피하기는 했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어찌 가지런하게만 인솔할 수 있을까. 해질 무렵 부산에 도착하여 인원을 파악해보니 한 명이 부족하였다. 유형석이란 친구였다. 쾌활하지만 좀 덤벙대는 아이였다. 부산이 종착역이니 그 앞 역에서 내린 게 아닌가, 선생님들이 알아보았다. 급한대로 부산역 부근에 여관을 잡았다. 다행히 형석이는 김해역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이 왔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일들다. 부산역 부근에도 극장이 있었다. 심심해하던 차라, 몇이서 극장에 들어갔다. 무슨 영화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노란샤쓰 입은 사나이'였다. 중간 정도까지 보았을까, 아이들이 들어와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형석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여관에 아무도 없어 성이 나셨다는 이야기였다. 조금 뜸을 들이고 마지못해 나왔다. 여관 복도에 모두 무릎을 꿇고 선생님의 장황한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속으로는 승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학여행의 첫날은 불상사로 점철되었다. 돌아오는 날 어떤 학우가 맹장염으로 응급처치를 받고 귀향하여 입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마 두 분 담임선생님들은 십년감수하셨을 것이다. 백 명 남짓 되는 시골 아이들의 천방지축 수학여행이었다. 그래도 검정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쓴 개구쟁이 시절의 수학여행이 그리워진다. 여행을 통해 지적인 학습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훗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학여행도 괜찮다. 가을이 마냥 깊어지고 있다. 어디론가 진정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201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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