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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사리 무료 밥집/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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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34회 작성일 11-09-23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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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사리 무료 밥집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은 종 삼 나는 기자다. 늘 현장을 찾아서 달린다. 동물이 먹잇감을 찾아서 달리듯 기자는 기삿감을 쫓아 달려야 한다. 칠흑 같은 밤길 자정이 지나 익산역에 도착했다. 노숙자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행인들의 벙거지 모자에서 반짝였다. 나도 노숙자처럼 행세하며 어슬렁거렸다. 승차권을 사려는 사람, 의자에 앉아서 잠든 사람, 신문지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 TV를 보는 사람 등 가지가지였다. 밖에선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신세타령인지 울분인지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와 노숙자는 확실히 달라보였다. 행색이 그렇다. 한밤중이라서 여행객 수에 비해 노숙자가 더 많아 보였다. 여자 노숙자도 두세 명 눈에 띄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깨끗한 화장실이 선진 한국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50대 여자 미화원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삼라만상이 고이 잠든 이 시각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니, 이거야 말로 기삿거리가 아닌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기자냐며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늘 교대로 하는 일이라며 밝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남자들한테 일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더욱 열심히 한다고 했다. 밤중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미화원 아줌마가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숙자들은 따뜻한 실내에서 마음대로 쉴 수 있고 깨끗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세수도 할 수 있으니 노숙자의 천국이 아닌가. 우리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미화원에게 건네주었다. 매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의자에 앉았다. 노숙자와 다름없다. 종이컵이 온기를 전해준다. 이 자리에서 고급 찻잔은 무용지물이다. 고급이 따로 없다. 그때그때 격에 맞아야 한다. 그래 나도 종이컵이 되자. 노숙자가 되어야지. ‘허! 참,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다니.’ 내 집 포근한 침대를 놓아두고. 늘그막에 이게 무슨 꼴이람.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한창 젊은 시절, 나도 세계 특파원 같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일까.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한 지방신문 도민(시민)기자로 위촉되어 6개월간 활동할 때의 일이다. 참 흥미 있는 체험이었다. 나는 노숙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한 노숙자가 담배 있느냐고 했다. 나는 옳거니 생각하고 마침 담배가 떨어졌으니 사러가자고 했다. 24시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주었다. 노숙자 세 명이 출입문 밖에서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담배란 참 묘한 물질이다. 담배를 피워 물자 노숙자가 된 이야기며 살아온 인생살이 등을 털어 놓았다. 내가 만일 소설가라면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업에 실패했다는 한 노숙자는 “노숙자가 따로 없다. 누구나 망하면 노숙자 된다.”며 재기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다음은 당시 전북도민일보에 보도된 내가 쓴 기사다. ......................................... “배고플 땐 언제든 밥을 드시러 오세요” -손철호 씨 익산서 무료 밥집 운영- 10일 오전 6시50분 익산역에서 노숙자 최근용(50‧가명) 씨를 만났다. 아침밥을 공짜로 주는 곳이 있다며 먹으러 가잔다. 따라갔다. 금방 노숙자 친구가 된 것이다. 익산역 앞 건너편 골목길에 ‘숭사리 무료 밥집’이 있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수중기가 뿌옇게 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통 방 정도의 공간에서 노숙자인 듯한 여자 2명, 남자 3명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빨간 운동복을 입은 50대 남자가 식사를 하러오셨느냐며 콩나물수제비국 한 그릇에 쌀밥 한 공기를 앞에 가져다 놓는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김, 단 두 가지였다. 비록 무료 밥집이지만 사랑이 넘치는 맛있는 밥이었다. 벽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배고픈 분은 누구나 오셔서 식사를 하세요. 밥은 밥통에 있고 국은 가스레인지 위에 있으며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니 꺼내어 맛있게 드신 후 빈 그릇은 깨끗이 씻어서 싱크대 위에 놓고 가십시오.” 10여 년 전부터 무료밥집을 운영해왔다는 손철호(54‧자영업) 씨는 우연히 한두 명씩 돌보다가 지금은 하루 30여명의 식구가 되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 직접 식사준비를 하고 식당은 낮 동안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지 스스로 챙겨 먹는다고 한다. 운영비는 연간 3천여만 원이 소요되는데 주로 지인들과 소속교회 사회봉사단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 머물다가 다시 성공한 사람들이 적극 돕는다고 기뻐한다. 손 씨는 노숙자들이 주민등록증이 없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한 것을 보고 20여명에게 익산시의 협조를 받아 주민증을 만들어 주어 정상적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종교생활을 하는 목적은 믿는 대상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며 신앙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가게 이름인 ‘숭사리’의 뜻은 崇(하나님)+사랑+이웃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라고 했다. ......................................... 노숙자 취재를 가서 뜻밖에 노숙자들의 안식처에서 대부(代父)역할을 하는 손철호 씨를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이 기사가 보도되자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지방자치단체도 사회복지단체도 하지 못하는 일을 개인이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신문은 ‘도민기자 마당’ 연말 특집기사로 아예 노숙자 문제를 집중취재 보도했다. 12월19일자 지면은 도내 노숙자의 현황, 대책, 노숙자 밀착동행 취재, 노숙자 대부 손철호 씨에 대해서 무려 4면에 걸쳐 사진과 함께 크게 다루었다. 실로 아마추어 시민기자 7명의 총력을 기울인 역작이었다. 내가 쓴 기사 중 ‘숭산리 무료밥집’에서 자활에 성공한 노숙자의 사례를 들어본다. ........................................... #고물수집‧ 쉼터에서 봉사활동‧ 동료 노숙자 챙기기 까지 40여 년 전에 고향 김천을 떠난 전무웅(69세) 씨는 전국 각처를 돌며 막노동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오다 지난 3월 익산에 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인력 모집하는 곳에서도 나이가 많다며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손에 쥔 것도 없어 막막한 처지였다. 그때 창인동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는 김호철 씨를 만나 노동자의 집에 머물던 중 노숙자의 대부로 알려진 숭사리 무료밥집을 운영하는 손철호 씨가 나의 딱한 사정을 듣고 주민등록증을 살려 한 식구로 맞아주었다. 지금은 기초생활 수급자로서 독립하여 생활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조금 30만원으로 방세 10만원과 공과금 등을 납부하고 한 푼 두 푼 모아 자전거도 샀다.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도 하고 낮에는 고물 수집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전씨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우리 노숙자들을 끌어안아주는 손철호 씨야말로 진정한 인간존중 인간 사랑의 실천자”라고 극찬하면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면서 노숙자를 돕겠다고 말했다. ............................................ 손철호 씨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기분 좋은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노숙자들이 나에게 대들고 욕할 때입니다. 큰소리치고 덤벼드는 행위는 자존심이 회복되었다는 신호거든요. 너와 나는 그간처럼 주기만하고 받기만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동등한 위치라는 겁니다. 노숙자들이 숭사리 무료 밥집으로 모여드는 이유도 이곳이 자유일 것입니다. 저는 시시콜콜 따지질 않습니다. 밥 좀 주고 잠자리 좀 제공했다고 왜 TV만 보느냐? 왜 잠만 자느냐? 왜 이제야 들어오느냐? …… 이런 말을 안 합니다. 도와주었으니 어떤 소기의 목적과 결과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죠. 이런 것은 장사꾼 심보입니다. 도움을 주었으면 도움을 준 그것으로 끝나야합니다.” 어떤 법문, 설교, 강론보다도 숭sa리 무료밥집 주인 손철호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폐부를 찔렀다. 올 겨울 익산역 크리스마스트리가 밝혀지면 다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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