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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침묵/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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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7회 작성일 11-09-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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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沈黙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은 종 삼 『님은 갔읍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읍니다. (중략)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읍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沈黙’을 휩싸고 돕니다.』 .................................................... 위의 글은 한용운(1879~1944) 시인의 불후의 명시 ‘님의 침묵’을 원문대로 발췌한 것이다. 1925년 일제 강점기에 발표한 이 작품은 당시 나라 잃은 울분과 광복의 꿈이 잘 승화되어 있다. 사랑하는 님(나라)은 침묵하고 있다. 당시 지식인의 고뇌를 알만하다. 한용운 시인은 기미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으로 체포되어 3년간의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나는 가끔 이 시와 ‘청와대의 침묵’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물론 침묵의 차원은 다르다. 떠나버린 님(국권 상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청와대는 왜 침묵했을까. 나는 청와대의 침묵의 의미를 찾고 싶다. 벌써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엊그제 일 같은데……. 익산교육청 장학사로 일할 때다. 담당 학교에서 현장 장학지도를 하던 중 급히 교육청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장학사의 주 임무는 장학지도인데 무슨 일로 들어오라는 것일까? 불안한 마음으로 하던 일을 접어두고 귀청(歸廳)하였다. 과장실에 들어가니 도교육청 장학관과 장학사 두 분이 와 있었다. 표정이 굳어 있고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나는 마치 수사관 앞에 불려온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자 장학관은 신문을 내보이며 왜 이런 내용의 글을 썼느냐는 것이었다. 자못 문초(問招)하는 말투였다. 나는 당시 다음과 같은 글을 한겨레신문에 기고했었다. ............................................................ 「과밀지역 학생 추첨 배정한 것」 ‘청와대 신문고 실망 담당부서에 떠넘겨’(22일치 6면)를 읽고 오해의 소지가 있어 해명하고자 한다. 글쓴이는 청와대 신문고에 민원을 접수시키기 전에 이미 해당기관에 충분히 항의했고 잘못된 정책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없이 자신들의 정책이 옳다는 억지소리만 듣다가 분통이 터져 청와대 신문고를 두드렸다고 했다. 글쓴이는 교육청이 2000학년도 중학교 입학생 배정을 잘못해 학생 57명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먼 거리 학교를 다녀야만 하게 됐으니 이를 시정하라고 항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인구과밀지역 거주 학생으로서 근거리 학교의 수용능력 한계로 부득이 추첨에 의한 임의 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통령이라고 해서 곧바로 시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 신문고는 국민의 언로가 막혀 있던 왕권시대나 독재정권시대의 유물이며 오늘날처럼 개방화 민주화시대에는 신문고가 만능이 아니며 신문고에 의존하는 것은 극히 비민주적이다. 은종삼 /전북 익산교육청 장학사 ............................................................. 장학관은 다그쳤다. 왜 대통령을 함부로 거론하고 신문고를 폄하(貶下)했느냐는 것이다. 무슨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투였다. 나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하면 진실이 왜곡되고 신변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나의 소신 있는 근무 태도를 교육계에서 알고 있는지라 나의 순수한 마음을 인정했는지 청와대에서 조사를 하라고 해서 나왔으니 투고하게 된 경위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내일 출근 전까지 도교육청으로 제출하기로 하고 일단 마무리하였다. 청와대로 들어갈 문서라고 생각하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뚱이란 참 신기하다. 평상시라면 저녁 9시 뉴스도 끝나기 전에 잠이 오는데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이 더욱 멀뚱멀뚱해졌다. 살아남기 위한 방어수단인가. 밤새도록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피곤함도 날이 밝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전문을 옮긴다. ................................................................ 신문투고 경위서 소속: 전라북도 익산교육청 직위: 장학사 성명: 은종삼 본인은 2000년 4월 28일자 한겨레신문 11면에 과밀지역 학생추첨 배정한 것의 제목으로 투고하였으며 그 경위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투고하게 된 동기 같은 신문 2000년 4월 22일 6면에 「청와대 신문고 실망 담당부서에 떠넘겨」라는 제목의 독자투고에서 우리 교육청이 시행한 2000학년도 중학교 입학생 배정이 대단히 잘못되었으며 민원인의 정당한 항의에도 일말의 반성도 없이 자신들의 정책이 옳다는 억지소리만 듣다가 분통이 터져 청와대 신문고를 두드렸다는 내용을 보고, 이는 우리 교육청 장학사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안으로, 첫째, 자칫 우리 교육청이 대단히 잘못된 행정을 하고 있고 민원을 소홀이 취급하는 것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둘째, 일부국민들이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현실을 일깨워 줄 필요성을 절감하고 투고의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2. 투고의 과정 투고를 하기 전에 민원인과 우리 교육청의 접촉과정 및 청와대 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인의 질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민원인의 자택을 방문하여 면담하고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종합 분석한 후 고뇌의 글을 썼습니다. 3.우리 교육청의 민원인에 대한 대응과정 〇재배정요구- 우리 교육청은 2000년 2월 7일 중학교 배정 발표를 하였으며 다음날 민원인은 자녀가 자망하지 않은 학교에 임의 배정되었으므로 입학시킬 수 없다며 재배정을 요구하였으나 이는 수용할 수 없는 사안으로 민원인을 설득하였습니다. 〇 특수사정 고려 재배정 수용 - 학부모가 모두 장애인이어서 학생이 가정을 돌보아야 한다는 특수 사정을 확인하고 재배정을 수용하였으나 학생 본인이 임의 배정된 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하여 재배정을 보류하였습니다. 〇 민원인의 계속된 항의-민원인은 익산시민연대를 통하여 도교육청으로 민원을 제기 자료를 제출토록 했고 또다시 청와대로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제기하여 답변 자료를 송부하였으나 이에 만족치 못하고 급기야 4월 22일 청와대 신문고에 실망했다는 내용의 글을 한겨레 신문에 투고하는 등 일관된 자기주장으로 무려 3개월간에 걸쳐 민원제기를 하였습니다. 4. 본인의 투고결심 이 모든 과정을 지켜 본 본인은 민원인의 투고를 읽고 우리 교육청의 정당한 입장을 밝힐 필요성과 대명천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살면서 아직도 절대권력 의존적인 그릇된 사고방식을 지닌 일부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투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 본인의 心境 본인은 본인의 할 일을 다 하였으며 대통령을 폄하하거나 여론수렴기관인 청와대신문고의 기능을 부정한 것이 아니므로 담담한 심경이며 앞으로도 공직자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견을 활발히 개진할 것입니다. 6 사과의 말씀 본인이 투고하기 전에 교육장님과 학무과장님을 비롯하여 동료 장학사님들과 먼저 협의과정을 거치지 못한 점은 공직자로서 불찰이라 사료되어 깊이 반성하고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 2000년 4월 28일 전라북도 익산교육청 장학사 은종삼 .......................................................... 밤새도록 쓰고 읽고 고치고 반복하고 혼신의 정성을 들여 쓴 신문투고경위서를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서둘러 도교육청에 제출했다. 참으로 홀가분하고 시원했다. 하고 싶은 말 다 쓰고 나니 후련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훌쩍 지났다. 궁금하기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청와대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마무리된 것 같다고 했다. 그 뒤 태풍이 지나가듯 중학교 입학생 재배정 민원은 잠잠해져 버렸다. 참으로 글의 힘이 대단했다. 시민단체의 압력을 과감하게 물리친 것이다. 만일 투고 사건이 없었다면 계속 불어 닥치는 태풍에 나뭇가지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1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당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가 신통할 따름이다. 그리고 왜 청와대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침묵으로 마침표를 찍었을까? 아직도 그 궁금증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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