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도 꽃이냐고/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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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도 꽃이냐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병욱
대부분의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꽃을 피우려고 흙구덩이에 묻힌 씨앗들은 껍질을 깨뜨리고 싹을 틔워 푸른 잎을 양산처럼 활짝 펴서 햇빛을 즐긴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사방으로 팔을 뻗어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휘감으며 온 땅을 뒤덮는다. 그것이 호박이다.
전주 서신동 도내기샘공원을 지나 전북노인복지관으로 가는 길목 오른쪽 언덕에, 밭으로 치면 두마지기쯤 되는 너비의 호박밭이 있다. 누가 호박씨를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전체가 호박꽃으로 물들어 장관이다. 거의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길이지만, 유독 오늘 아침에는 그 호박꽃들이 노란 목을 길게 뽑고 손바닥만 한 입을 벌리면서 보란 듯이 눈짓을 한다.
호박은 씨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간식거리다. 껍질을 벗겨 그냥 먹어도 구수한 맛이지만, 상점에서는 살짝 볶아 건강식품으로도 판매한다. 이렇듯 호박은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며 먹을거리를 제공해준다. 부침개나 찌개, 호박 밥과 떡이나 호박찜은 물론 호박나물과 호박말랭이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요리재료로 변신하여 식도락의 세계를 넘나든다. 어디 그뿐인가. 간식거리로 유명한 호박 차와 호박죽, 호박식혜, 호박엿은 그 맛이 일품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그러나 전통음식인 이 호박식품이 그리 잘 팔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서구화된 식성이 우리 생활 깊숙이 스며들다보니 그런 것이려니 싶다. 요즘 핫도그와 피자에 익숙해진 신세대 젊은이들은 보릿고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한 것 같다.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이 외래 음식에 밀려 망각의 세계로 퇴출당한 느낌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것은 가까운 마트나 백화점 판매대에 줄줄이 늘어선 수입농축산물들이다.
보릿고개를 자주 넘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비록 먹을 것이 부족하여 주식인 쌀마저도 흔치 않아 보리나 고구마, 감자, 옥수수 죽 등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껍질을 벗기거나 또 나무나 풀뿌리를 캐먹으며 연명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다.
밥은 물론 간식거리도 별로 없었고 반찬 역시 자급자족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지, 무, 배추, 상추, 호박 등의 농산물과 야외에서 쉽게 캘 수 있는 냉이, 달래, 머위 등의 자연산 나물들이 거의 전부였다.
이토록 어렵게 살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옛것을 숭상하며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마음가짐으로 베풀며 살 줄 알았다. 그러나 풍요로운 지금은 어떤가. 이해타산에 밝은 세상이 온 누리를 점령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박하고 메마른 인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필요성을 충족시키고자, 뜻있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통해서 정서적이고 여유로움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여기에 때맞춰 등장한 것이 음악과 태고의 신비를 머금고 있는 꽃이다. 음악은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청취자 등의 복잡한 여건과 시설들이 따르면서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래도 음악을 통해서 정서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꽃은 어떤가. 꽃은 때와 장소 등 아무런 구애 없이 피어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심성을 뒤흔들 수 있는 훌륭한 자연의 창조물이다. 꽃의 생명은 아름다움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꽃은 진정 미의 대명사인 것이다.
그런데 꽃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꽃은 종족보전이란 생명의 순리 앞에서 본능적으로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야 벌과 나비 같은 수정매체를 쉽게 끌어들여 자신은 수정이 되고, 그 대가로 꿀을 제공하면서 열매로 결실을 맺어 생존한다. 이 열매가 식물에게는 종족보존의 수단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간식거리인 과일로 맛을 자랑한다. 한데 그 과일 맛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과일처럼 꽃에 대한 취향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길거리 화원에서 접할 수 있는 꽃들은 많다. 주로 잘 팔리는 꽃일게다. 어떤 꽃은 인기가 좋아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가 하면 어떤 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 같은 꽃이련만 왜 이럴까. 아무래도 각기 꽃들이 지닌 독특한 향기와 아름다움의 차이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나의 시야를 사로잡은 샛노란 꽃, 그것은 바로 호박꽃이었다. 비록 흔한 꽃이긴 해도 분명 꽃은 꽃인데 호박꽃은 꽃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호박이라는 열매로 사람들을 위해 일편단심 자기를 희생양 삼는 호박꽃을 바라보며, 자연의 섭리를 경시한 인간의 그릇된 편견인‘호박꽃도 꽃이냐?’란 표현에 한탄을 금할 길이 없다.
(2011.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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