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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없는 세상/한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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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823회 작성일 09-09-1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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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없는 세상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나는 시험 때가 되면 초비상 상태다. 평소 책과 가까이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 더는 미룰 날이 없어야만 책을 펴는 습성 때문이다. 급기야 시험날이 다가오면 눈에 불을 켜고 정신없이 책장을 넘겨 보지만, 어느 순간 눈은 초점을 잃고 어둠에 갇혀버린다. 엎드린 팔이 저려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새벽이 찾아 온 뒤였다. 흘러간 시간이 어찌나 아깝던지 ‘진즉에 공부를 좀 할 걸’ 하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부터는 꼭 미리미리 준비해야겠다고 매번 다짐을 하면서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며칠 동안 선잠에 지칠대로 지친 나는 ‘제발 시험만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일단 시험이 끝나면 마음이 홀가분했다. 한 번도 잘 보았다고 생각해 본 일은 없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그동안 못 잔 잠을 실컷 자보려고 일찌감치 잠을 청해보지만 생각처럼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은 자려면 안 오고, 안 자려고 기를 쓰면 쏟아지니 정녕 심술쟁이다. 살아오면서 공부를 하기가 제일 힘들었던 때는 2001년도 공무원교육원에서 한 달간 교육 받을 때로 기억된다. 한 방에 4명이 기거했는데, 나는 다른 교육생보다 2배 3배 아니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단체생활이다 보니 다들 자는데 혼자서 불을 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단체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대부분 교육생은 승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무관했다. 단지 교육받는 것이 좋아서 온 것이다. 강의시간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들어도 강의만 끝나면 머릿속이 텅 비었다. 저녁이면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모두 잠든 틈을 타 조심스럽게 불을 켜면, 금세 누군가 ‘여태 공부하세요,’라며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무 캐다 들킨 사람마냥 얼른 불을 끄고 다시는 불 켤 생각을 못했다. 그 지난날들이 어제 일처럼 다시 떠오른다. 다행히 점수가 좋지는 않았지만 재교육자 명단에 끼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교육을 보내달라고 해서 간 교육이라 더욱 부담이 컸다. 그날 이후로는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사는 일은 스스로 피하기로 했다. 적어도 내 방의 교육생과는 나이 차이가 20~25년 정도 날 테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내 실력을 그들에게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시험 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돌아왔다. 때로는 젊은 날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물론 돌아갈 수도 없지만. 나는 지금이 제일 좋다. 온통 내 세상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골라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서도 문학공부 시간이 여느 과목보다 가장 기다려진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종이에 끼적이는 게 늘어났다. 시를 쓴다고 써보았지만 신통치 않아서 우선 접어놓고, 수필을 썼더니 의외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칭찬은 귀로 마시는 보약이라더니 그동안 처져 있던 나에게 힘과 용기를 듬뿍 부어 주었다. 새 힘을 얻은 나는 오랫동안 가슴 저 편에 묻어두었던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 맞추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다 보면 어느 때는 어둠이 시야를 가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답답해서 못 견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가져본다. 언젠가는 분명히 맛깔스러운 수필을 꼭 빚어내고 말리라는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서 말이다. 시험없는 세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세상, 어떤 구속에서 벗어나 큰 바다를 맘껏 헤엄칠 수 있는 세상, 자유가 이렇게 좋은 것일까? 파란 하늘이 나를 안고 두둥실 춤을 춘다. (2009.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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