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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5회 작성일 11-07-1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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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약해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마음 약해서 잡지 못 했네 / 돌아 서는 그 사람 /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 내 마음 허전하네요 / 짜라라 짜짜짜……. ‘짜라라 짜짜짜’ 아무 의미도 없는 가사 한 토막이 우리 국민의 우울한 가슴을 달래주던 때가 있었다. 1979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를 당하고, 훗세인이 이락크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구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등, 국내외가 암울하고 혼란했던 그 시절에 들엇던 노래엿다. TV나 라디오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방송을 탔던 그 노래가 생각난다. 온통 ‘짜라라 짜짜짜’라는 후렴구를 입에 물고 살다시피 했다. 1980년대에 배삼용, 구봉서, 이기동 등 당대 최고 인기코미디언들이 출연하여 영화까지 만들었던 불멸의 노래 ‘마음 약해서’다. 가요계에 남성 보컬그룹이 우세를 보이던 당시, 심재영 씨가 이끈 혼성그룹 〈와일드 캣츠〉가 혜성처럼 나타나 ‘마음 약해서‘, '십오야’ , ‘정든 부부’ 등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뿐 아니라 동남아를 돌며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선구자들이었다. 〈와일드 캣츠〉의 주요 멤버인 리드보컬 임종님 씨의 콧소리와 카랑카랑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허스키한 목소리는 어수선한 우리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부르는 그 노래는 많은 사람들을 신바람나게 했던 히트송이었다.  벌써 30여 년 전 일이다. 그렇게도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안사람이 교통이 불편한 순창군 쌍치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우리는 주말 부부가 되어 토요일에나 만나는 기쁨 속에 살아왔다. 쌍치면은 노령산맥의 주맥을 이루는 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섬진강 상류에서 갈담 저수지로 유입되는 축령천 물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 비록 산골 오지라 하지마는 산수가 아름다워 여름 한 철 보내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산에서 흐르는 냇물이 맑아 물고기와 다슬기가 많았다. 밤에는 면민이 모두 나와 물놀이를 즐겼다. 동편에는 남자들이, 서편에는 여자들이 자유롭게 지내는 곳으로 야간 질서가 엄격하였다. 안사람은 어린 아이 둘과 가정부와 함께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어느 날 출근할 준비를 마치고 나설 때 빠이빠이 하면서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짜라라 짜짜짜. 혼자 남으니 쓸쓸 하네요. 짜라라 짜짜짜…….’ 손수건을 흔들면서 정확한 발음도 못하는 어린 아이의 하소연을 가슴에 담고 교단에서 종일토록 제자들과 씨름하면서 무거운 마음을 달랬었다. 퇴근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 안방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또 가슴을 아리게 하였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 놀던 병아리 한 쌍 보았나, 보았지, 어쨌나?’ 하면서 마른걸레로 빨래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요사이처럼 장난감이 없으니 방안에 있는 살림도구가 모두 놀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장거리며 두 손을 벌리고 나오는 아이를 안고 한없이 목이 메었다고 한다. 신은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따 먹은 우리 인간에게 땀 흘리면서 살아가야하는 숙명을 내려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쫓겨났던 그 실낙원을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다. 주말이 오면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뵙거나 교통이 불편한 산길을 더듬어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정읍 칠보와 산내를 넘어 순창 쌍치라는 고을로 찾아갔다.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공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인생의 깊은 의미도 모르고 그저 신의 명령에 순응했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정렬의 불덩이가 뜨겁게 불타오르기 때문이었으리라! 어쩌면 가난과 고통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를 깨달아가는 듯하였다. 1남 5녀를 길러 온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여유가 없는 편이었다. 다만 주어진 삶에 운명처럼 길들여져 왔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제는 세월의 강물에 흘러간 낙엽처럼 잡을 수 없는 추억들이다. 때때로 사진첩을 뒤적이면서 지난날 사랑스러웠던 모습을 영상으로 떠올려본다. 눈가에 가녀린 미소를 지어보는 황혼의 넋두리가 남아돈다. 인생은 고해라 했던가? 후기 인상파인 화가 반 고흐는 ‘인생은 죽음보다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고통의 눈물은 웃음보다 낫다. 그리고 모든 인생이 슬픈 것만은 아니다.’라고 절규한 바 있다. 인간의 소망은 고통이라는 역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떠나가는 그 사람, 세월이 가면 다시 못 오네, 짜라라 짜짜짜 가슴 아픈 이야길랑 날려 보내자, 짜라라 짜짜짜 ……. (201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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