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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갚아준 말 한마디 천 냥 빚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 병 욱
언제나처럼‘칭찬하기’로 시작되는 수업시간이다. 회원들이 써온 글들을 읽고 평하면서 내 글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글을 읽기도 전에 느닷없이
“박 선생이 보내주는 글을 읽을 때마다 컴퓨터 글자체가 달라 이중으로 작업을 해야 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야.”
라고 지도교수가 일침을 놓았다. 갑작스런 말을 듣고 보니 심난한 기분이 들면서 예감마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글을 읽은 뒤의 조언들이 침착하거나 예사롭지 않고, 그나마 듣기 거북한 언사들 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웠다. 비록 내가 잘못 쓴 글이긴 하나 벌집을 건드리는 것 같은, 탐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로 말미암아‘칭찬하기’의미도 퇴색되어 초라해졌다.
2주 전 김** 회원의 신입등단 회식자리에서였다. 버스운수사업을 했다는 이** 회원이 나에게‘퇴고도 안한 글을 올린다.’고, 섣부른 판단의 껄끄러운 발언을 하기에 예의상 묵과했으나, 오늘만큼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지난 4월 어느 날 수업시간에도 모 신입회원이 처음으로 썼다는‘연극에 관한 글’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이루어져서, 그 뒤로는 한 때 글쓴이를 강의실에서 만날 수 없었다. 오늘도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어림잡아 30여회에 걸쳐 메일을 통해 글을 교정 받았다. 개인적인 메일도 두어 차례 오갔는데, 그런 때 컴퓨터 글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실도 몰랐다가 이처럼 수업 시간에 그 사실을 알고 보니, 지나가는 그 말 한마디가 일군 어설픈 분위기로 인해 몹시 당혹스러웠다.
수업도 힘들었지만 꾹 눌러 참고 다음 글에 대한 평을 기다렸다.‘끌려간 애마’글에서였다. 내 글보다 매끄럽게 쓴 글이기도 했지만 이번에 등단한 김** 회원은 겸손하면서도 웃음까지 곁들인 부드러운 말씨로 두어 군데 지적을 해 주셨다. 같은 말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아’다르고‘어’다르다는 말이 실감나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버스바퀴처럼 빙빙 돌았다.
이튿날, 같은 교직에서 근무했던 선배들과 얼마 전 함께 수필공부를 했던 문우들을 만났다.‘설익은 등단의 자만’에 물들지도 않고 풋풋한 인간미가 넘치는 자리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아, 전에도 그런 일(김*원, *** 등등)들이 몇 번 있었구나!’하고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 왔다.
더위에 지쳐가는 한 학기를 돌이켜보았다. 수업에 참석하는 분들의 글눈이 제각각이어서 구구한 의견들도 나왔겠지만, 그보다는 시간에 쫓겨 대충 넘어가는 수업의 마무리가 아쉬웠다. 일단은‘칭찬하기’를 절반씩 교대로 발표하여 시간을 절약하고, 남는 시간동안 지도교수가 총체적으로 수업갈무리를 지어 주는 것이 어떨까. 작금과 같은 오해도 사라지면서 글동아리의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을는지…….
희로애락이 점철된 삶을 살다보면 별 희한한 일들도 많다. 이 강의실에 첫 발을 디디며 우려했던 사실들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스트레스가 쌓여 몸이 천근만근이나 무겁다. 노후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트레스인데 이것을 풀기 위한 방편으로 쓰는 글인지라, 자갈길 같은 거친 글도 되고 그것을 다듬고자 수필창작반을 다니는 것이 아니던가.
나의 부족한 소치로 빚어진 일이니 누구를 탓 하리오. 다만 글을 통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여생을 뒤돌아보며 황혼의 여울에 닻을 올릴 뿐…….
다정했던 예전 문우들의 모습들이 아롱지며 눈目길에 싸여, 2학기 강의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기왕 시작한 공부이니 수필작법에 관한 체크리스트라도 만들어 놓고 수업시간마다 공부하는 작품들을 꼼꼼히 분석기록하면서 발표도 하고 알찬 수필공부를 계속해야겠다.
그동안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적어놓았던 기억들을 더듬어 기행문을 써보았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기술하고 소감을 적는 과정들이 장황하고 글의 짜임새를 이루는 형식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다보니‘줄줄이 사탕’글이 되어 긴장감도 신선함도 없어 나 스스로 불만이 많았다.
그러던 중 엊그제 읽은 <11일간의 호주와 뉴질랜드의 탐방기>를 통해서, 짧고 간결하면서도 단락마다 나오는 멋스런 시적인 표현들과 어울리는 글을 보았다.‘좋은 글을 읽었구나!’하는 느낌과 함께 기행문을 쓸 수 있는 요령도 터득했다. 역시 수필의 길은 수필 속에 있었다.
좋은 글들과 함께 밝아오는 새벽을 새 기분으로 열자.
(2011.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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