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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숨결을 찾아서/한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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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18회 작성일 11-07-01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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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숨결을 찾아서 -KBS내 고장 산하기행, 무주편 참가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오늘은 KBS 전주방송총국에서 실시하는 '내 고장 산하 기행'에 나섰다. 시간은 항상 마음을 앞질러 가는 건지 오늘도 서둘러 출발지로 향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 이 팀장이 반색을 하며 맞아주었다. 아마도 작년 여름, ○○교육 때 내가 팔에 깁스한 채 참석했을 때 계속 신경을 써주더니 아직도 그걸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버스는 6월의 검푸른 숲길을 따라 무주 덕유산을 향해 싱싱 달렸다. 모내기가 끝난 들판은 푸름으로 물들어 있고, 먼 산엔 운무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하늘을 이고 차창을 두들기는 빗소리는 오랜 가뭄에 목말라하던 초목들이 춤을 추는 반주곡처럼 신바람이 났다. 무주군 설천면 소재지를 지나 나제통문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언제 준비했는지 우의까지 챙겨 주었다. 일행 120여 명은 비옷을 입고 강무경 의병장의 동상과 비석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했다. 그런 다음 무주 푸른꿈고등학교 교장 이태룡 박사의 해설을 들었다. 강 의병장은 무주군 설천면 사람으로 한학을 익힌 선비였다. 그는 호남 일대에서 필묵 장사를 하면서 우국지사들과 교분을 맺고 선봉장이 되어 많은 전과를 세웠다. 그러다가 심남일 대장과 신병치료차 화순 풍치의 바위굴에서 은거하던 중 그의 부인 양방매 여사와 함께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그때 부인의 나이는 19세로 훈방조치 되었지만, 강 의병장은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을 받아 32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남편과 사별한 양 여사는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일생을 수절하며 살다가 96세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왕대밭에서 왕대가 난다더니 그 지아비에 그 지어미가 아닐까. 다시 버스를 타고 무풍면사무소에서 이장춘 의병장 비석 앞에서 참배를 했다. 이 의병장도 무주출신으로 1907년 10월쯤 덕유산을 근거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200여 명으로 구성된 의진으로 무주·남원·함양·안의 등지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고 2년 뒤에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흑석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현재 무풍면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는 그의 손자로부터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다음은 무주구천동에서 문태서 의병장 비석을 찾았다. 이 분은 1907년 의병을 일으켜서 호남의병장이 된 인물이다. 그는 국권이 침탈되자 덕유산에서 태백산까지 오가면서 의병을 독려했는데 사촌 여동생의 남편이 일본헌병에 고발해서 잡혀갔다니 정말 기가 찰 일이다. 이 분은 의병투쟁을 하면서도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았고, 오히려 의병을 빙자해서 약탈을 일삼던 무리를 처단했기에 무주군 안성면 죽장리와 일안면 갈마리 주민이 그의 행적을 찬양하는 송덕비를 세웠다. 1910년 1월 10일 자 일본 비밀문서에는 “전북 무주지방의 한 마을에서는 그를 신과 같이 믿고, 부녀자는 부뚜막으로부터 음식을 궤로 옮길 때 처음 것을 문태서에게 제공하여 그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칠연의총에 가려고 칠연계곡에 들어서니 물이 맑고 경치도 매우 아름다웠다. 이곳은 구한말에 일본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의병장 신명성과 그 부하들이 잠든 곳이다. 시위대 소속이었던 신명성은 의병 150명과 투쟁을 하던 중 칠연계곡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의병 100여 명이 모두 이곳에서 순국했다. 이에 1975년 지방민들이 유해를 수습하여 묘역을 만들고 칠연백의총(七淵百義塚)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점심때가 되었다. 간식을 먹어서 든든했지만 맛있는 도시락을 대하니 군침이 돌았다. 넓은 태권도 경기장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을 먹고 덕유산 깊은 계곡에 자리한 원통사에 도착했다. 비는 양보할 줄 모르고 계속 추적추적 내렸다. 이곳은 문태서, 신명성, 김동신 의병장들이 근거지로 삼고 위급할 때마다 의병투쟁을 벌여 나라를 구한 곳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사찰을 돌아보며 오늘의 일정을 마쳤다. 나는 그동안 무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오늘 내 고장에 어려 있는 조상의 숭고한 혼과 삶이 살아 숨 쉬는 흔적을 살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 시절에는 아버지가 의병이면 아들도 죽였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는 변절자이거나 아니면 바보시늉을 하며 무식자로 남의 집에서 천민생활을 하는 등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라와 정의를 사랑하는 충정이 얼마나 강했으면 많은 사람이 목숨을 바치며 의병활동을 했을까 싶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 즉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고 했으니 의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호남을 지키기 위해 내 고장 산하에 피를 뿌리며 역사의 제단 앞에 목숨을 바친 게 아닐까. 이제 우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삶이 헛되지 않도록 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본받아 전쟁 위험이 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오늘 궂은 날씨에도 끝까지 열심히 강연해주신 이태룡 박사님과 소중한 시간을 마련하여 수고해주신 KBS 전주방송총국 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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