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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축제 뒷 이야기/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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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498회 작성일 11-05-29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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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붕축제 뒷이야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병욱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책상에 한 통의 등기우편물이 와 있었다. 뜯어보니 대봉축제프로그램이었다. 스승의 날 행사 대신 1년에 한 번씩 퇴직교사들에게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이다. 이것을 본 순간 지난 30여 년간 몸담았던 교직생활이 영화의 스크린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해마다 고입연합고사가 끝난 뒤 열리는 특별활동행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기쁘게 했다. 여기에는 유별난 추억이 서려있다. 그 축제는 나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영광의 산물이요. 교직자로서의 사명감을 심어준 최대의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학생예능발표회의 일환으로 합창경연대회가 있었다. 당시 동산고(우석고 전신)에서 근무하던 음악선생님이 창시하여 전통적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행사였다. 이 발표회는 각 학급별로 지정곡과 자유곡 두 곡을 선정한 뒤 음악수업시간에 기본적으로 지도를 받았다. 그런 뒤 각 학급담임의 주도 아래 연습을 했다. 해마다 전교생이 참가하는 유일한 교내예능경연대회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음악선생님들이 수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별도의 보충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정규수업시간에 지도하는 것인 만큼 당연했다. 어떻게 보면 음악선생님들의 보람이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담당 음악선생님이 너무 힘들다고 항의를 한 것이다. “하기 싫으면 그만 두어라. 행사를 하지마라.”는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청천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당연히 해당선생님을 설득하여 교육적인 차원에서 지도하는 것이 교장의 책무가 아닌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처리해버리니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교장으로서 취할 행동도 아니었지만 연구주임이던 나 또한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처사였다. 특별활동부서를 담당하고 있는 연구주임의 주 업무가 사라진 셈이다. 학생들의 인성과 덕성을 지도해야 할 교사의 입장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잠이 오질 않아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사범학교 출신인 그 교장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주임 단독으로 전결 처리해 버렸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우석축제이다. 특별활동발표회의 일환으로 교육 전 분야가 총망라되었다. 그러니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내 지휘 아래 전교생과 전 선생님들이 적극 참여하여 활동해주었다. 드디어 제1회 우석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같이 협조해 주신 모든 선생님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자신의 부실을 부하직원이 무 결재로 바로 잡았으니 분명 하극상이다. 누가 보아도 교육적으로 올바른 사안인데 무어라 할 말이 있겠는가? 유구무언일 수밖에. 학교장 승인도 없이 이런 큰 행사를 연구주임 마음대로 추진하다니……. 괘씸죄가 적용되어서 나의 점심식사는 날마다 눈칫밥이었다. 그러나 언론계 출신인 나를 감히 건들진 못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면서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예전에는 음악만을 발표하던 단순한 합창대회였지만 지금은 음악은 물론 시화전과 각종 전시회까지 열린다. 교육전반에 걸쳐 명실상부한 종합예능발표회로 성장하면서 우석축제가 기반을 잡아갔다. 발표장소도 처음에는 강당에서, 다음에는 우석대학교강당으로, 그 뒤에는 전북학생회관으로 바뀌었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꾸준히 이 행사를 치렀다. 연구주임으로서의 사명감과 각종 업무분야에서 내 소임을 충실히 다했다는 보람을 느꼈다. 그동안 말 못할 사연도 숱하게 많았지만 후회는 없다. 이제 물러나자. 연구주임 직을 내놓았다. 그 교장 밑에서 연구주임을 맡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후임 연구주임이 우석축제를 계승 발전시켰다. 그제야 그 교장은 새 연구주임에게 수고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뒤에 대붕축제로 개명되면서 알찬 내용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제20회 대봉축제라니,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몇 해 뒤 그 교장은 정년퇴임을 맞은 뒤 교단을 떠났고, 그 무렵 나도 퇴임을 했다. 얼마 전 그 교장은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렇다고 껄끄러웠던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1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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