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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해후/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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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12회 작성일 11-05-2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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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해후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박병욱 30여 년 전, 나는 군산 S방송에서 근무한 일이 있었다. 초임이었지만 건강문제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아까운 직장이었다. 그 뒤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가끔 못내 아쉬웠던 옛날을 회상하곤 했었다. 추억이란 역시 반갑고 그리운 것이었다. 지난 주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과거 S방송시절의 사원모임이 오늘 있으니 참가해 보라는 연락이었다. 해당 전화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예정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전주종합경기장 남문으로 나갔다. 거기에서 그 모임을 주관한 옛 동료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일행과 더불어 목적지인 부안으로 향했다. 차내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이 많았다. 대야송신소에서만 근무했기에 연주소 직원들을 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분들이니 기쁘게 맞아 주었다. 시원스럽게 확 트인 김제 만경 벌판을 가로지르며 서해안으로 달리는 버스 속에서 옛 동료들과 회포를 푸는 기분이라니, 말로 형용 할 수 없었다. 한 시간여 만에 도착한 곳은 부안 지방문화재로 서문 안 당산을 마주 바라보며, 만석꾼인 고故 춘헌 이영일 선생이 사셨다는 약 150여년 된 전통 한옥이었다. 춘헌은 1900년대 농경사회 부안에 문맹퇴치를 위해 중등교육기관을 세우셔서 국가에 기증한 분이란다. 그 고택을 '당산마루'라 칭하고 음식점을 차려 우리를 맞은 주인 역시 우리와 같은 S방송 사우였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한정식에 잘 담근 오디주와 함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식후 백봉기 PD의 사회로 진행된 연회는 S방송 악단단원들의 밴드연주로 한층 흥을 돋우었다. 여느 모임에서도 볼 수 없는 생음악의 무드 속에 분위기는 고조되어 갔다. 서울, 광주, 대전, 전주, 익산, 부안 등 각지에서 모인 23명은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마다 펼치는 장기자랑은 가히 일품이었다. “사람은 고향을 떠나면 누구나 나그네입니다.” 라며 중간에 신동우 수필가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에 뒤질세라 권장수 아나운서부장이 명기 매창과 촌은 유희경과의 멋진 순애보도 들려주었다. 이화우 흩날릴 제 / 울며 잡고 이별하니 추풍낙엽에 / 저도 나를 그리는가 천리타향에 / 외로운 꿈만 / 오락가락 하누나 그대는 낭주골에 살고 / 나는 서울 산골에 묻혀 있으니 그리고 애타는 마음 / 그지없네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제 / 창자가 끊기는 구나. 전주 이목대와 오목대에서 35세의 매창과 63세의 촌은이 나눈 애절한 사랑의 시란다. 문학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은 권 부장의 해설이었다. 정담을 뒤로하고 새만금 물살을 가르며 세계최장의 새만금방조제를 달렸다. 차중에서 권장수 아나운서 부장과 이 모임의 대펴격인 김병남 이사가 소개하는 새만금에 대한 유익한 정보가 귀에 솔깃했다. 신시광장으로 들어섰다. 전에는 없었던 시설들이 보였다. 새만금 관광시설 안내와 함께 상설 공연장 등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한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현재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잇는 연륙교 공사가 계획 중이란다. 새만큼의 미래가 밝기는 하지만 그 개발속도는 더디어서 우리들의 후손 대에 가서나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군산에 접어들었다. 전에 사용되던 KBS군산방송연주소가 지금은 군산문화원이 되었다. 간단한 술자리를 갖고 군산에 사는 회원들은 여기에서 헤어지게 되었다. 부안 회원이 마련해준 갈치 내장으로 담근 젓갈을 선물로 하나씩 돌렸다. 10여 명이 하차하고 나니 차안이 휑하니 빈 것 같았다. 첫 직장으로 10년간 근무했던 대야송신소 앞을 지났다. 내 생의 일부분이 머물렀던 곳이 아닌가? 옛날 출퇴근하며 오갔던 옛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전주에 도착하여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다행스럽게 일행 중 K회원이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매월 2회씩 모임을 갖는다며 같이 참여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나도 그러고 싶다. 밤늦은 이 시각, 30년만의 해후를 만끽하며 즐거웠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2011.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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