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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안골노인복지관 &amp;gt; 백업 &amp;gt; [백업] 교양교육</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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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깐뒤</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52</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article-head-title">‘깐뒤’</div>	 	 <div class="info-text"><ul class="no-bullet auto-marbtm-0 line-height-6"><li><i class="fa fa-user-o fa-fw"></i> 전민일보</li><li><i class="fa fa-clock-o fa-fw"></i> 김 학</li></ul></div><div><br /></div><ul class="info-social"><li>

           </li></ul><hr /><div class="user-content">		 <div class="user-snb-wrapper">				 <div class="clearfix"></div>					 <div><img alt="" src="http://www.jeonmin.co.kr/news/photo/202011/321286_62741_2056.jpg" /><div>참 희한한 단어다.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그곳만의 독특한 어휘다. 토박이 우리말은 아닌 성싶다.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을 끌어낸 간디의 사촌쯤 되는 사람의 이름일까? 아니면 간첩노릇을 하다 붙잡혔던 어느 대학 교수의 가짜 이름인 깐수의 형제이름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아무리 사전을 뒤져도 그런 말은 찾을 수가 없다. 영어나 중국어사전은 보나마나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다. 한글로 씌어진 글자이기 때문이다.</div><div>나는 조계산 선암사(仙巖寺)를 찾을 때마다 '깐뒤'란 팻말을 보며 슬며시 웃음을 짓는다. 일부러 동행자들을 그곳으로 유인하여 그 글자를 읽어보라고 권하면, 대개 십중팔구는 '깐뒤'라고 읽으며 의아해 한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판자에 먹으로 '깐뒤'라 쓰여져 있다. 유명한 서예가의 글씨는 아니다. 낙관이 없는 것으로 봐서 그것은 너무도 분명하다.</div><div>대궐이나 각 지역의 문루(門樓) 또는 정자에는 고급스런 현판이 걸려 있다. 그 현판은 대개 이름난 서예가의 글씨로 만들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 고급 현판에 익숙한 눈으로 "깐뒤"라 새겨진 글씨를 보면 조잡하기 이를 데 없다. 어느 장난끼 넘친 스님이 일부러 그렇게 써 붙인 게 아닐까? 문화재급 문루의 현판이 양반 티 나는 우아한 이 도령의 모습이라면 '깐뒤'란 팻말은 상놈티 나는 방자의 차림새나 다름없다.</div><div>나는 이따금 술자리에서 '깐뒤'가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러나 정답을 맞춘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다행이 그 술자리엔 선암사에 다녀온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유식한 체 '깐뒤'란 말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 모두가 배꼽을 잡으며 웃는다.</div><div>선암사는 한국적인 절의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천년 고찰이다.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조계산에 대가람을 일으켜 선암사라고 했다고 하니 얼마나 유서 깊은 사찰인가? 그런 사찰에 '깐뒤'란 팻말이 붙어 있으니 도선 국사가 부활하여 그 팻말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div><div>사찰의 화장실은 대부분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온갖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곳이니 얼마나 좋은 곳인가? 그 이름에서 구린내를 연상하는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오히려 도통(道通)할 수 있는 선방(禪房)쯤으로 여기는 게 당연하려니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 절 선암사는 왜 해우소라 하지 않고 '깐뒤'라 했을까?</div><div>아마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은 어떤 스님이 한 글인데 습관적으로 한자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뒤깐'이라고 써야 할 것을 '깐뒤'라고 썼다는 이야기다. 사실 '뒤깐'은 우리네 표준말이 아니다. 제대로 쓰려면 '뒷간'이라고 쓰는 게 옳다. 그런데 '뒷간'이라고 하면 우선 옛날의 측간이 연상되고, 측간이라고 하면 구린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또한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곳으로 여겨진 곳이 뒷간이다. 오죽했으면 우리 선인들이 측간과 처가는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고 했을까?</div><div>선암사 '뒷간'은 전통적인 한옥건물이다. 아파트나 양옥에서 양변기만 사용하던 사람들이라면 감히 볼일을 볼 엄두도 내기 어려울 것이다. 너무 깊고 넓어서 허리띠를 풀 용기조차 낼 수 없을 줄 안다. 군대에 가서 유격훈련을 받은 사람의 용기가 아니라면 엄두가 나지 않을 게다.</div><div>그곳에 써 붙인 글자는 '깐뒤'가 아니라 'ㅅ간뒤'란 고어체(古語體)로 쓰여져 있다. 그러고 보면 그 표기의 연대는 한글을 훈민정음이라고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른다. 언제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두고두고 사찰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하는 묘미가 있다.</div><div>곰곰 생각해보면 '깐뒤'란 말도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남자라면 바지와 팬티를 내린 뒤에, 또 여자라면 치마는 올리고 팬티는 내린 뒤에 용변을 보아야 하니 말이다. 어쨌든 너무 해학적이며 깊은 상념에 젖게 하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유서 깊은 선암사를 찾을 때마다, 나는 법당이나 석탑, 부도(浮屠)보다는 '깐뒤'에 더 멋과 매력을 느낀다. 그 '깐뒤'란 푯말이 먼 훗날 세계 유일의 국보급 문화재가 될지 누가 아는가?</div><div>김학 수필가</div></div></div></div>]]></description>
<dc:creator>김 학</dc:creator>
<dc:date>Thu, 19 Nov 2020 06:00: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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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다락원자료입니다~~</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49</link>
<description><![CDATA[다락원자료입니다.참고하시고열공하십시요~~ ]]></description>
<dc:creator>해모수</dc:creator>
<dc:date>Tue, 27 Dec 2016 17:29:2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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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012 송년 잔치</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48</link>
<description><![CDATA[2012 송년 잔치(12.13)는 '활동자료집' 전시로 하였으니 준비하여, 12월 5일까지 반장에게 제출바랍니다.]]></description>
<dc:creator>강석태</dc:creator>
<dc:date>Tue, 04 Dec 2012 15:43:3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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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어 중에 북경어 광동어란 무엇인가요?</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43</link>
<description><![CDATA[중국어 중에 북경어, 광동어란 무엇인가요? 


중국에는 공통어인 표준중국어 외에도 많은 방언들이 있지만, 이 방언들도 하나의 언어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한자를 문자로 쓰고 있고, 기본적인 어휘나 분법 구조도 비슷하죠..하지만 발음은 각 방언이 서로 소통되지 않을 정도로 다릅니다..
방언의 종류는 무수히 많지만 크게 여덟개의 방언군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북경어로 대표되는 북방방언, 
상해어로 대표되는 오방언, 
호남화라고도 불리우는 상방언, 
남창어로 대표되는 감방언, 
매현어로 대표되는 객가방언, 
복주어로 대표되는 민북방언, 
대만에서 쓰고 있는 방언이 속해있는 민남방언, 
홍콩에서 쓰고 있는 방언이 속해있는 월방언(홍콩에서 쓰는 말을 광동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북방방언은 분포 지역이 넓어 다시 '북방관화, 서남관화, 하강관화'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중에서도 많이들 알고 있는 것이 바로 북경어, 광동어일 것입니다..
사실 광동어는 분포범위는 작은 편이지만 홍콩이 세계적인 관광문화도시이고 또 중국어 문화개혁개방 이전의 영화, 음악 중심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광동어와 국어(표준어)의 차이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표준중국어는 성조(음의 높낮이)를 4개로 나누고 있지만, 광동어는 성조를 6~8개로 나누고 있습니다..
또 발음에서도 큰 차이가 있는데 '나(1인칭)'를 의미하는 "我"의 발음을 예로들면 표준어에서는 "워"라고 읽고 광동어에서는 "응오"라고 읽습니다..(몇가지를 더 예로 들면..."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多謝"도 표준어에서는 "뚜오씨에"로..광동어에서는 "또제"로 읽구요..숫자 1.2.3을 표준어에서는 "이얼싼"으로..광동어에서는 "얃이쌈"으로 읽습니다)
듣고서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음...만약에 중국어는 중국언데 "얃" "받" 
"쌈" 등의 발음이 있다면 "아~ 광동어구나" 생각하시면 거진 맞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땅에서도 지형적인 문제로 전라도와 경상도 방언이 크게 차이가 납니다..제주도의 경우에는 더 심하죠.. 하물며 우리나라보다 훨씬 지형이 넓은 중국에서는 방언의 격차가 매우 심합니다..서로 뜻이 통하지 않을 정도지요..홍콩반환 이후 홍콩에서도 교육기관에서 "표준중국어"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발음이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죠..(경상도 사람이 아무리 표준어를 써도 그 억양이나 발음이 베어나오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Tue, 21 Feb 2012 17:14:49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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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의 표준어를 왜 '만다린어'라고 부르죠?</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42</link>
<description><![CDATA[중국의 표준어를 왜 '만다린어'라고 부르죠? 


 힌두어로 '장관이나 자문 위원'을 뜻하는 mantri가 말레이어에 들어와 쓰였고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가 이 말을 역시 들여와서 mandarim(포르투갈어) 또는 mandorijn(네덜란드어)을 이 지역의 '관리'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이 말이 영어에  mandarin으로 들어와 중국 관리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만다린이란 말은 처음 마카오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마카오는 전 포루투칼의 점령지였죠.

 그 당시 마카오 현지인들은 방언을 사용하였고 정부의 고급관리들은 한족의 언어 즉 현재에 표준어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슨 고급관리들은 거의가 수도인 북경에서 파견오기 때문에..

원래 현재 쓰는 보통화는 베이징의 관리들이 쓰는 말이었던 관화(관리들의 말)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지금도 중국 표준어를 영어로는 mandarin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외국인들은 중국어 (차이니즈)라고 하면 만다린 or 켄토니즈 라고 묻곤 하는데
만다린이 의미하는 것은 표준어, 캔토니즈는 광동어를 뜻합니다.(정확히 粤语）
캔토니즈의 캔톤은 홍콩어의 발음으로 광동이라는 뜻이죠.

 예로 북경은 페킹(북경) 홍콩(샹항) 총칭,중경 (청킹)이 좋은 예이지요.

 전에는 광동등지에 외국인이 많았기에 명칭이 홍콩어로 지정된 것이 많았으나 지금은 많이 개정된 편이죠.]]></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Tue, 21 Feb 2012 17:04: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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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어에 대해서...</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41</link>
<description><![CDATA[중국어에 대해서... 

1) 중국어는 표준어를 정함에 있어서: 
   *북경지방 방언의 발음을 표준어로 삼고,
   *북방지역 관리들의 말인 관(官)화를 어휘 면에서 표준으로 삼았으며 
   *문법 면에서는 모범적인 현대 백화문을 기초 어법으로 삼아 표준어가       제정되었습니다.
즉, 표준어 선정의 3가지 요소 중에 관화는 어휘 면에서 채택된 것입니다. 이러한 표준어를 보통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보통화는 국가에서 제정된 말이므로 국어라고 불리기도 하고, 북경지역의 말에 대체로 가깝기 때문에 북경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실은 북경어랑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중국어를 한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족들의 말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중국의 민족은 여러 민족이 있으나 대다수가 한족이기 때문에 생겨난 말입니다.
만다린, 보통화, 국어, 한어, 북경어.. 이상 5가지 단어는 표준어를 뜻하는 말입니다.]]></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Tue, 21 Feb 2012 17:00:41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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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어번안곡노래--&lt;꽃반지&gt;</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9</link>
<description><![CDATA[한국의 "꽃반지 끼고"라는 노래를 중국어버전으로 부른 것입니다. 가사는 한국가사와 다른것 같은데 나름 내용이 좋네요~~ 시간 나실 때 들어보세요^^]]></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Mon, 20 Feb 2012 01:29:48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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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표점부호(&amp;#26631;点符&amp;#21495;)의 용법</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8</link>
<description><![CDATA[중국어 공부를 하시면서 한국어와 조금 다른 표점부호들을 많이 보셨죠?

 자주 사용하는 표점부호들에 대한 설명과 쓰임새를 올려 놓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Tue, 07 Feb 2012 16:37:19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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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베이징 서단(西單)백화점 에너지 절약 안내문</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7</link>
<description><![CDATA[節約能源的重要
에너지절약의 중요성
  我國能源資源總量雖然較多, 但人均占有量少. 人均淡水資源量僅爲世界人均占有量的四分之一, 人均耕地不到世界平均水平的40%, 人均森林面積僅爲世界人均占有量的五分之一; 45種主要鑛産資源人均占有量不到世界平均水平的一半. 隨着經濟快速增長, 對煤電油運和重要資源的需求量明顯增加, 我國重要能源資源短缺對經濟發展的制約進一步加劇. 節約能源資源, 大力促進能源資源的高效利用和循環利用, 是緩解能源資源約束矛盾的根本出路. 
우리나라 에너지원 총량은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1인당 점유량은 매우적다. 1인당 담수자원은 세계 1인당 점유량의 4분의 1이고, 1인당 경작지는 세계평균수준의 40%에 못 미치며, 1인당 삼림면적은 세계 1인당 점유량의 5분의 1이고, 45종의 중요 광산자원의 1인당 점유량은 세계 평균수준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석탄, 전기, 가솔린 운반과 중요자원의 요구량은 더욱 증가하는데, 우리의 중요 에너지원 결핍의 경제발전에 대한 제약은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다. 에너지원 절약, 에너지원의 고효율적 이용과 순환이용을 힘껏 촉진하는 것은 에너지원의 제약과 모순을 완화시키는 근본책이다.
  我國能源生産和消費以煤爲主, 燃煤造成的二氧化硫和煙尘排放量均占其排放總量的80-90%. 主要汚染物排放量已經超過環境承載能力, 流經城市的河段普遍受到汚染, 許多城市空氣汚染嚴重. 水土流失量大面廣, 草原退化, 生物多樣性減少. 大力節約能源資源, 減輕能源資源消費增長給生態環境保護帶來的巨大壓力, 關係到國家民族的生存與發展.
  우리나라에서는 석탄을 주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는데, 석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황과 연기, 먼지 배출량은 다른 배출총량의 80-90%를 점한다. 주요 오염물질 배출량은 이미 환경이 견디는 능력을 초과했고, 도시를 거쳐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오염되었으며, 여러 도시의 공기오염은 매우 심각하고, 토지 유실량은 어마어마하며, 초원은 퇴화했고, 생물의 다양성은 감소했다. 에너지절약에 힘쓰는 것, 에너지소비의 증가가 생태환경보호에 가져다 준 거대한 압력을 감소시키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관련이 매우 깊다.]]></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Tue, 07 Feb 2012 15:53:27 +0900</dc:date>
</item>


<item>
<title>唐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代價</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6</link>
<description><![CDATA[唐은 7세기 중엽에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고구려가 만주에서 사라지자 북방의 유목민족들이 흥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宋이 건국하기(960년) 34년 전에 거란족의 遙가 먼저 건국하여 송을 괴롭힙니다. 
뒤이어 여진족의 金이 건국하여 역시 송을 괴롭힙니다.
 송은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천도하고 맙니다. 
北宋이 南宋으로 변한 것입니다. 

  南宋도 金에 뒤이어 일어난 몽골족의 元에 의하여 멸망당합니다. 

 元을 몰아낸 明 역시 만주족의 淸에 의해 교체됩니다.  

 말하자면 송이 건국한 960년, 10세기 부터 청이 멸망한 1911년, 20세기 까지 
중국은 명대 270여년간을 제외하고는  북방민족들에게 참 많이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 북방민족들을 억제할 고구려가 사라진 탓입니다. 
만약 가정하여 고구려가 계속 존재했더라면 이들 북방민족들은 중국을 그렇게까지 괴롭히지는 못햇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최소한 이들과 대립관계에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이들이 중국을 함부로 침략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참고로 고구려는 강성했을 때에도 중국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唐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켜서 치루게 된 대가는 참으로 엄청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Tue, 07 Feb 2012 15:32:41 +0900</dc:date>
</item>


<item>
<title>2011, 송년의날 큰잔치 중국어반 사진</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1</link>
<description><![CDATA[2011, 송년의날 큰잔치에서 중국어반 발표 관경을 첨부합니다,  

보시고 잘못된점은 다음에 개선할수 있도록 합시다.]]></description>
<dc:creator>최영수</dc:creator>
<dc:date>Mon, 06 Feb 2012 10:16:36 +0900</dc:date>
</item>


<item>
<title>2011, 송년의날 큰잔치 중국어반 사진</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4</link>
<description><![CDATA[&gt;
&gt;
&gt; 2011, 송년의날 큰잔치에서 중국어반 발표 관경을 첨부합니다,  
&gt; 
&gt; 보시고 잘못된점은 다음에 개선할수 있도록 합시다.
&gt;]]></description>
<dc:creator>천리향</dc:creator>
<dc:date>Mon, 06 Feb 2012 18:05:49 +0900</dc:date>
</item>


<item>
<title>칭찬/윤경묵</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30</link>
<description><![CDATA[칭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윤경묵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나는 시방 고령층에 속한다. 올해가 희수(喜壽)이니 말이다. 정부 와 사회단체는 노인들에게 많은 시혜를 베풀고 배려를 한다. 요즘의 노인들은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곳곳에서는 노인대학이나 노인복지관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올해부터 몇 곳을 정하여 나가고 있다. 그 중 한 곳이 전주안골노인복지관이다. 많은 과목 중에서 수필창작반에 들어갔다. 문학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용기를 내어 수강하기로 하고 지난 2월 7일부터 매주 1회씩 강의를 듣고 있다. 수강인원이 30여명인데 인원이 다 찼다. 지도강사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수필가 김학 교수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때는 수강생들의 자기소개가 있었고, 수필의 정의 및 종류,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 일반적인 내용을 강의했다. 수강생들 중엔 상당한 실력을 갖춘 분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속으로 좀 걱정도 되었다. 그렇지만 한 번 결심하였기에 열심히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 첫 시간을 마치면서 지도교수가 숙제를 냈다. 다음 시간에는 수강생 모두에게 '칭찬거리'를 찾아와서 발표하라고 했다. 글로 써오라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무엇을 말할까 조금 걱정된다.
 칭찬이라는 제목을 생각해 보니, 문득 지난 12월에 있던 조그마한 집안일이 생각났다. 나는 날마다 10분 거리에 사는 둘째딸네 집에 간다. 왜냐하면 딸 내외가 부부공무원이라 아침출근시간이 빨라 남매(1학년, 3학년)의 밥을 차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서 손자들의 밥을 차려주어 같이 먹은 뒤 등교를 시킨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거실을 정리하는데 못 보던 상장이 보였다. 1학년 손녀가 받은 상장이었다. 평소 학교가 끝난 뒤 미술학원에 다니는데 우리 고장 ㅈ신문사가 주최한 아동미술전에서 입상하여 받은 것이다. 손녀는 없었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A4용지에 몇 마디 칭찬의 글을 써서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왔다. 그 뒤 이틀이 지나 거실을 정돈하는데 또 3학년 손자의 상장이 보였다. 그래서 또 칭찬하는 말을 적어 놓고 왔다. 다음날 나의 칭찬메모가 상장 왼쪽에 붙여져 있었다. 딸이 상장케이스에 상장과 함께 붙여 준 것이다. 딸이 나에게 고맙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나도 딸의 칭찬을 받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칭찬해 주고 칭찬 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칭찬거리를 보면 아낌없이 칭찬하여 사기를 북돋아 주고 나도 칭찬 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볼까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던가?
                        (2011. 2. 8.)]]></description>
<dc:creator>두루미</dc:creator>
<dc:date>Sat, 05 Mar 2011 03:42:16 +0900</dc:date>
</item>


<item>
<title>종강 송년보임</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29</link>
<description><![CDATA[일어 고급반 종강 송년 모임을 알립니다.

1. 일시 : 2010. 12. 15(수)  12:00-
2. 장소 : 진안돼지잔치;복지관에서 북쪽으로 약 50m 지점
3. 회비 : 10,000원
많은 참여로 성황을 니루어주시길....]]></description>
<dc:creator>강석태</dc:creator>
<dc:date>Fri, 03 Dec 2010 09:38:21 +0900</dc: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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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최영수님보조</title>
<link>http://www.angol.co.kr/sub06_01/28</link>
<description><![CDATA[중국어간단회화]]></description>
<dc:creator>khtosoo</dc:creator>
<dc:date>Fri, 03 Sep 2010 06:46:3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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